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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남부군 - 이태

by 수레의산 2024. 5. 1.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을 읽다가 남부군 이야기가 나와서 읽었다.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이념이란 무엇인가? 순수한 젊은이들의 순수한 희망을 갖고 자기들의 지위 향상에만, 아니 권력 욕심만 내세운 것이 아닌가? 결국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사회주의 역시 상층부 권력자들은 순수한 젊은이들, 순수한 믿음을 배반했다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남부군은 자자가 이야기했듯이 전사 편찬이라는 의미로 썼으므로 빨치산, 아니 남부군의 태동부터 궤멸까지의 과정을 그려서 오히려 밋밋하다. 소설로 쓰인 빨치산의 딸에 비해 재미는 적으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많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서술하는 것보다는 책에서 몇 줄을 인용하여 적는 것이 더 좋겠다.

 

(중략)

  여기서 내게 변명하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좌익심파들이 그랬었다고 말하고 싶다. 

  제2차대전 후의 사회불안은 패전국인 일본에 사회당 정부를 탄생시켰고, 전승국인 영국에서조차 노동당 정권을 만들어냈다. 폐허 위에 서서 사람들은 생활이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어떤 구원을 바랐고, 그 희망을 좌파 정권에 걸어본 시대가 있었다. 한국의 전후도 가혹했고 부조리도 엄청났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북은 사과고, 남은 수박이라는 비유까지 있었다. 소련의 힘을 배경으로 공산정권이 들어선 북한은 겉만 빨갛고 속은 새하얗고, 반대로 비군정하의 남한은 겉과는 달리 속은 빨갛다는 뜻이다. (중략)

 

  "전 공산당은 모르지만 인민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믿었고, 이승만과 한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은 인민의 불행이라고 믿었었지요. 그 인민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이북이 과연 그러한 나라인지 그건 모르지요. 결국 뭐가뭔지 모르면서 이대로 가버리는 거지요" (중략)

 

  평소 당성이 가장 강한 것처럼 보였던 북로계의 거물급 정치부 간부들이 제일 먼저 투항 귀순한 사실은 상당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에 비해 모두가 유격대 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도당 위원장 전부와 대부분이 남로계인 구사부계 지휘자는 항쟁 끝이 산중에서 최후를 마친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중략)

 

  김희숙은 이렇게 스물네 살의 한 맺힌 생애를 겨울산에서 마쳤다. '혁명'은 그녀에게 무엇이었는가? 그녀에게 있어 전쟁은 복수의 집념이었고 '투쟁'은 한풀이였다.  (중략)

 

  역사를 창조하고 움직이는 동력도 인간이다. 그 과정에서 신은 인간에 의해 창조됐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 신에게서 인간의 힘 이상의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그는 오직 결과만을 자신의 뜻인 양 위장할 뿐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닌가. 그것마저도 신의 뜻이라고 강변할 텐가?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믿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신의 이름 아래 저질러진 그 숱한 잔학과, 억압과, 착취와 기만, 갈등, 전쟁과 무지의 강요를, 행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당신을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 (후략)

 

  남부군은 우리 역사에서 정말 비참하고 불행한 역사였다. 그들은 북한 공산정권에서도 찬밥이었고, 남한의 자본 자유주의 정권에서도 탄압 대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순수한 믿음만 갖고 일주일 이상을 굶어가며 눈밭의 지리산속에서 버텼다. 그때 그들을 지휘했던 빨치산 수뇌부도 무리했고, 오히려 인텔리, 제대로 배운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았을까? 정지아의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박종화가 죽은 뒤부터 계속 유격대의 원칙을 어겨가며 투쟁을 했다, 그 결과 시나브로 빨치산 대원들은 죽어갔고, 따라서 그들이 존경했다는 이현상도 죽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당시의 빨치산은 조기에 사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북한은 제공권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들이 태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이들은 일단 보급로가 차단되었고, 통신도 되지 않았다. 마치 정묘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갔던 인조처럼 포위되었다.  그들은 지리산으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더구나 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되면서 국군의 힘이 지리산으로 집결되면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자신의 상관인 사단장 식사를 책임진 빨치산 병사는 전투중에도 냄비를 비롯한 식기들을 배낭에 메고 절대로,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소중히 지녔다. 그리고 여러 공훈을 세우고도 작은 잘못때문에 동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비참하게 투쟁했는데 지금그들이 꼭 이루고자 했던 해방세상이 북에는 왔는가? 해방세상이 아니라 김일성 3대의 권력유지 세상만 만들었다. 결국 빨치산에서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만 희생된 것이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