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신동아 31-33. 1934. 5~7)
1934년이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감곡 매괴 천주교회 사제관이 지어진 날이다. 사제관 이마에 떡하니 쓰여있다. 1934년이면 내가 태어나기 25년 전이니가 까마득한 옛날이다. 간악한 일제의 수탈에 녹초가 되는 민초드리 있는가 하면 조금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층이 신학문을 배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는가 보다. 물론 조선의 부잣집 양반이나 친일의 대가로 많은 부를 거머쥔 사람은 달랐겠지만 소위 인텔리들, 배운 사람들은 배운 자존심에 막일은 못하고 나름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다고 하다. 아마도 당시 산업이 크게 번창하지 않았으니 일자리도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좋은 일자리는 일본 놈들이 차지했을 테고...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서울에서 방 하나를 얻어 생활하는 P는 있는 세간살이, 옷 등을 전당포에 잡히며 쥐직에 혈안이 되지만 매번 거절당한다. 그런 와중에 시골 형님댁에 맡겨 놓은 아들을 서울로 보낼 테니 학교도 보내고 좀 가르치라는 편지를 받는다. 취직도 안 되고,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굶으며 지내는 처지도 그렇지만,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막노동도 못하고, 질이 좀 떨어지는 일자리도 체면상 못 잡는 것은 쓸데없는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형님 생각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만나서 친구의 책을 저당 잡혀 돈 육 원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신다. 육 원을 거의 다 술값으로 치르고 카페에 들렀다가 다시 선술집으로 가서 나머지도 다 날린다. 술집 작부는 16살부터 술집에 나와서 18세가 되었지만 자기의 빚은 80원으로 늘었다고 하며 단 20전이라도 주면 자신의 몸을 내어주겠다는 여성을 보고 수중에 있던 2원 몇십 전을 던지고 나온다. P는 어떤 여성은 정조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겨우 20전에 자기의 정조를 내던지는 여성에게 혐오를 느낀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배움을 강조하여 자신가 같은 레디메이드 인생들이 양산되었다고 사회를 원망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술집 여성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녀를 술집에 팔아먹은 그 부모, 또는 친적을, 그리고 그녀를 술집에서 작부로 부려서 술을 많이 팔고, 그 돈을 착취해 온 술집 주인을, 그 불쌍한 여성을 한낱 자신의 성욕을 배설하는 배출구로 여긴 남성들을 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각자 처한 처지가 있었겠지만....
2. 명일 - 채만식(조광 12~14호 1936. 10~12)
유유부단한 인텔리 범수, 공부는 했으니 시원찮은 직업은 체면상 또는 격에 맞지 아니하여 잡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공부하게 만든 사회에 미루고 있다. 1930년대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 1945년 해방 정국에서부터 1950년대 중반기까지 좌우 이념 갈등으로 서로 죽이다가 1960년대 들어서 국내 산업자본이 커지고, 국가의 규모와 정부의 기틀이 잡히면서 일자리도 늘었겠지. 그렇다 해도, 며칠씩 굶어가면서도 좀 굽신거리면서 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직장을 잡든지, 아니면 돈 많은 술친구에게라도 돈을 좀 얻을 생각을 해야지, 그 알량한 자존심과 소심한 마음에 그냥 앉아서 술이나 얻어 처먹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인텔리는 무엇인가? 여기에서도 인텔리는 자기를 배움으로 이끈 사회를 원망하며 자신의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동차 수리점에 보내 기술을 배우게 한다.
자신은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부인이 때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다른 부인에게 굽신거리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배가고파 두부를 훔쳐 먹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당시 소위 인텔리라는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3. 치숙(痴叔) - 채만식(동아일보1938.3)
제목은 어리석은 아저씨 또는 부끄러운 아저씨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화자가 더 불쌍하다. 뭐 국가관도 없고, 자존감도 없고, 그저 배부른 돼지새끼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아저씨에게 주장하는 좀 모자란 조카 갔다. 이 아저씨는 소위 인텔리인데, 당시에 좀 살만해서 대학과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사회주의에 빠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회 개혁운동에 동참하고 일종의 독립운동? 아니면 당시에 유행했던 브나로드 운동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
3.1 운동 이후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계는 실력양성운동을 했는데 이중 비타협파는 이상재가 조선민흥회를 만들었고, 타협파는 이광수, 최남선 같은 변절자가 있었다. 그리고 사회주의계들은 정우회를 중심으로 농민. 노동자. 학생. 청년 여성. 어린이. 백정등 소외된 계층의 문맹퇴치운동에 앞섰다. 그러나 이들은 일제의 치안유지법(1925)으로 탄압을 받았으며 민족주의계 비타협파의 조선민흥회와 사회주의계의 정우회가 신간회로 합쳐졌다.
소설에서도 화자의 아저씨, 정확하게는 당고모부도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감옥에도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아저씨는 소싯적에 결혼한 당고모를 팽개치고 다른 여성을 첩인지, 내연녀인지와 살았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자 그 여자들은 아무도 연락이 없었지만 당고모는 자신을 팽개쳤던 고모부의 옥 수발을 다 들었고, 병들어서 보석으로 나온 고모부를 집으로 모셔서 지성으로 보살폈다. 소설 속의 화자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는데 당시에는 고모 쪽 친가가 살만해서 당고모가 화자를 데려다 키워서 당고모에 대한 애틋한 심정도 있었겠다. 하여간 화자는 사회주의라는 것에 대한 지식도 없고, 자본주의라는 것도, 일제의 식민지가 무엇인지도 정말 모르는 문맹자 같았다. 그는 지금 일본인 상회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더욱 열심히 일해서 일본인 사장의 마음에 들고, 그의 덕으로 일본여성과 결혼하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꿈에 젖어있다.
그러니 브나로드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감옥까지 갔다 왔지만 정작 자신의 조카는 제대로 깨우치는 교육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화자와 아저씨가 대화하는 것을 보면 아저씨는 너무 답답한지 침묵을 지키는 일이 많다. 아저씨라는 사람도 너무나 큰 이상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지 않은가?
4. 논 이야기 - 채만식 (협동 1946.10)
한생원은 어렸을 적에, 아니 열몇 살 적에, 고을 원에게 논 13마지기를 빼앗겼다. 고을 원은 한생원의 아버지를 동학농민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물론 한생원의 아버지는 동학도가 아니었다) 잡아가서 고문을 가했다. 고문울 이기지 못해 결국 자기가 아는 사람 이름 10여 명을 대었고, 그에 따라 그 나머지 10여 명도 역시 끌려갔다. 어느 날 이방이 찾아와서 "아버지를 그렇게 감옥에 가두어 죽이려고 하느냐"라고 한다. 제발 살려달라고 하자 너희 집에 있는 논 13마지기 땅문서를 가져오면 풀어주겠다고 한다. 결국 13마지기 땅을 내어주고 아버지는 풀려났다. 그리고 곧 왜놈들의 세상이 되었고, 한생원은 자꾸 빚을 져서 결국 나머지 7마지기 논도 일본인에게 팔아먹는다.
그러던 중 일본이 패망했다. 그러나 한생원은 조선일 적에 땅을 빼앗겼는데 뭐 해방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만세도 아니 불렀다. 그리고 속으로 일본인이 도망가면 자기가 팔아먹은 땅은 다시 자기 것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일본인이 패망하면서 자신의 땅을 관리인이나 그밖에 눈치 빠른 조선사람에게 위임해서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렸다. 결국 한생원은 조선일 때나 일제 때나, 또 해방되나 역시 빈털터리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5. 도야지 - 채만식(문장27호 1948.10)
문태석은 모든 일에 시큰둥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버지는 일제 때는 일제에 부역했고, 해방 이후에는 정권에 부역하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국회의원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에 모든 일이 될 대로 되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한동안 70년대 소설에도 등장했다. 사장의 아들이면서 그 아버지의 생활을 비판하고, 아버지의 뜻과는 사뭇 다른 쪽으로 행동하는 그런 소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돈으로 방관하는 삶을 사는 젊은이들... 태석이 이와 비슷하다.
아버지 문영환뿐 아니라 어머니 최 씨도 교회를 자신의 부를 나타내는 수단과 남편의 선거운동에 동원하기도 하고, 그의 둘째 누이 역시 비슷하다. 매형은 건설회사를 하는데 부실공사를 하고 뇌물을 먹여 준공검사를 받아 이익을 챙기는 그런 사람이다. 그 누이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되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하에 거금 150원을 투자한다.
어머니 최 씨는 선거일 당선을 확실하게 믿고 당선 축하 잔치에 쓸 돼지를 미리 주문했지만 결국 낙선하게 되고, 낙선이 된 날 공교롭게도 축하파티용 돼지가 도착했으나 그냥 돼지를 돌려보낸다. 지금도 이런 후보가 많지 않을까? ㅇㅇㅇ ㅇ 당에 ^^
6. 산골 나그네 - 김유정(제일선 11호 1933.3)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총각집에 어느 날 나그네 여인이 찾아와서 밤이 늦었으니 하룻밤 재워달라고 한다. 홀어머니는 추운데 어서 들어오라고 친절을 베푼다. 그리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남편은 죽고, 아이도 없다고 하자 며칠 더 묵다 가라고 한다. 그 이삼일 사이에 막걸리를 파는 홀어머니 집에 새로운 갈보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때거리도 부족한 마당에 이게 웬 떡이냐며 손님을 받아들이고 나그네 여인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술자리에 앉아서 술이나 좀 팔아달라고 사정한다. 나그네 여인은 못 이기는 척 술자리에서 술을 팔아준다.
이 집 아들 덕돌이는 결혼이 막 성사되기 전에 깨진 이력이 있다. 그는 없는 살림에 혼사 준비를 다 마쳤는데 여자의 집에서 지참금 30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깨진 것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떡거머리 총각으로 살고 있다. 홀어머니는 여인이 남편도 죽고, 아이들도 없으니 자기 며느리가 되어 함께 살자고 꼬신다. 나그네는 못 이기는 척 수락을 한다. 그래서 덕돌이는 마냥 신이 났다. 결혼 그다음 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덕돌이 지쳐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나그네는 이미 자신의 옷을 모두 들고 도망을 갔던 것이다. 밤새 덕돌이와 홀어머니는 도망간 여인을 찾고, 도망간 나그네 여인은 버려진 물방앗간에서 병든 남편을 깨워서 도망을 간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본 내용이다. 그때 TV에서 본 여인은 꽤 이뻤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디나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묘사했다.
7. 금 따는 콩밭 - 김유정(개벽 속간 4호 1935. 3)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노다지 광풍이 불었다. 찾아보니 일제는 일부러 조선의 금을 채굴하기 위해 노다지 붐을 조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금 생산이 세계적으로 많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영식이는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는 순진한 농군이었다. 그런데 금에 대해서 제법 안다는 수재는 열심히 영식이를 꼬신다.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봤자 지주에게 도지세 주고, 일제에 세금 내고 나면 뭐가 남느냐고 하며, 그까짓 거 금만 나오면 몇 백 원 버는 건 일도 아니라고 바람을 넣는다. 그러면서 영식이네 콩밭 너머 저쪽에 큰 금광이 있는데 그쪽 금맥이 영식이네 콩밭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하며 꼬신다. 결국 영식이는 그 수작에 넘어간다.
매일 논에 있는 벼도 보살피지 않고, 콩밭의 콩은 다 흙속에 파묻히도록 땅만 파댄다. 벌써 여러 날 그렇게 땅굴을 파도 금은커녕 금빛도 안 뜨니 서서히 안달이 난다. 영식이는 답답하고 짜증이 밀려온다. 그럴 때 그의 아내 역시 답답한 마음에 영식에게 뭐라고 떠들면 그저 마누라에게 그 화풀이를 하며 매번 손찌검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땅을 파면서 수재와 자꾸 싸우게 된다. 이제 영식이는 눈이 시뻘게지고, 가끔 파란 불꽃이 인다.
그러다가 수재는 땅을 파다가 "나왔다. 드디어 금맥이 나왔다" 라며 소리 지른다. 그의 손에는 황토색 흙이 쥐어져 있다. 그 황토색이 금맥이라는 것이다. 영식과 그의 아내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생각이 들며 벌써 한밑천 잡았다는 꿈속을 헤맨다. 한편 수재는 속으로 " 오늘 밤에 꼭 도망가야겠다"라고 다짐한다.
8. 만무방(되는대로 사는 놈) - 김유정(조선일보 1935.7)
응칠이는 농사를 짓고 살았다.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도지세 주고, 세금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러나 산 입에 거미줄은 칠 수 없고 빚을 내서 곡식을 사거나 노름을 했다. 어느 날 밤 응칠이네는 야반도주를 한다. 그리고 객지를 떠돈다. 남의 집 처마에서 자거나, 다리 밑, 길옆에서 자거나 그렇게 저렇게 굶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살다가 그의 아내가 "이렇게 세 식구가 뭉쳐 다닌다고 뾰족한 수도 없으니 헤어집시다"라고 제안하자 응칠이도 옳다고 생각하며 헤어진다.
그 이후 응칠이는 되는대로 살아간다. 놀음판에도 끼고 밥을 얻어먹을 때도 있고, 굶을 때도 있고 그야말로 인생 뭐 있냐는 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그 동생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는데, 그 동생은 응칠이와 달리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병이 들어 꼼짝하지 못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그는 논의 가을겆이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을겆이를 하면 도지세와 세금을 내고, 빚쟁이들이 들이닥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동생의 논에 벼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하자, 가엾은 동생의 논의 훔쳐가는 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잠복한다. 드디어 벼를 훔쳐가는 놈을 붙잡고 보내 바로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자기 논의 벼를 얼굴을 꽁꽁 싸매고 몰래 훔쳤던 것이다. 그나마라도 먹으려고... (아이고 비참해라)
9. 봄. 봄 - 김유정(조광 2호 1935. 12)
데릴사위 이야기, 성례를 시켜주지 않는 장인과 티격태격.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있었던가?
어수룩한 데릴사위, 약은 장인, 키가 크지 않는 점순이 ㅋㅋ
10. 동백꽃(생강나무 꽃) - 조광 7호 1936. 5
성적으로 아직 미숙한 남자와 조숙한 점순이와의 이야기. 이거 역시 한국 단편소설집에선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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