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출기 - 최서해(조선문단 6호 1925.3)
고향에서 삶을 견디지 못해 간도로 갔지만 간도는 더욱 만만하지 않았다. 그곳은 왜놈들이 조선땅을 비워야 제놈들의 이주민이 정착을 할 것이기 때문에 간도로 가면 살만하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으리라. 지금 생각 같아서는 미리 답사라도 하고서 떠나니 무작정 떠나서 그리 고생을 할까 안타까운 생각도 들지만, 1900년대 초만 해도 조선사람, 특히 한양 이남의 사라마들이 간도까지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하루 벌어 하루도 못 먹는 사정인데 여비가 있을 턱이 없던 비참한 시절 아니었는가?
김○ ○는 내지에서 살지 못하여 노모와 젊은 아내와 함께 간도로 갔다. 그러나 간도로 가면 농사지을 땅이 널렸으리라는 생각과 달리 땅은 없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차지하거나 개간이 안 된 땅들은 청인들의 소유지로 그땅을 개간하여 농사짓는다고 해도 당장은 먹을 것이 없기에 빚을 얻어야 했다. 그렇게 빚내서 땅을 개간하고 드디어 농사를 지었지만 1년 동안 먹은 곡식을 갚고 나면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김○ ○는 노모와 만삭의 아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나 매일 주린배를 움켜져야 했다. 구들장을 청소하거나 변소를 푸거나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서 품값으로 콩을 받아 두부를 만들려고 하니 또 나무가 있나? 청인들의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잡혀서 치도곤을 당하기를 수십 차례.... 그나마 두부가 잘못되어 쉬어버리면 팔지도 못하고 그 쉬어터진 두부를 먹으며 견뎠다. 심지어 아내는 배가 고파 귤껍질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 ○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 양심껏 살아도 지금 태어나는 아이 역시 자신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자기 자신부터 살아야 자식도 살고, 아내도 살고, 부모도 산다고 생각하며 집을 탈출해서 xx단 x 선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xx단 x 선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 작가 최서해는 함북 성진에서 태어났으며 신경향파 문학가다. 아무래도 공산당 쪽에 가까웠으리라. 아무래도 왜놈들의 시대이기에 명확히 대한독립단이니, 대한 애국단이니 하는 이름은 쓸 수 없었겠지. 그래서 xx단으로 이름 지었으리라. 1920년대는 3.1 운동 이후 만주땅에서의 독립전쟁이 가열차게 전개되던 시절이다.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왜놈들은 홍범도를 토벌하기 위해 훈춘 사건을 일으켰다. 홍범도는 김좌진과 청산리에서 연합하여 청산리 대첩을 이루었고(1920.10), 쪽발이들은 1921. 4월에 간도참변을 일으켜 우리 민족들의 민가를 학살 방화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그저 청인 놈들의 수탈과 왜놈들의 학살에 그냥 앉아서 당하느니 독립군단에 가입하여 투쟁하는 편이 낫다고 나도 생각한다.
2. 홍염(紅炎) - 최서해(조산문단 18호 1927.1)
이번 이야기는 또 서간도로 이주한 조선민족의 비참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문서방은 역시 조선에서의 삶에 지쳐 땅이 많다는 헛소문에 속이 서간도로 이주했다. 그에게는 룡네라는 16살 먹은 딸이 있다. 문서방도 탈출기에 나오는 사람처럼 첫해 청인에게 돈과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첫해 농사지었지만 그동안 꾸어먹은 식량을 갚고 나면 다시 빈털터리다. 이번에는 겨우 농사를 짓는데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청인, 인가에게 빚을 연장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애초에 인가 놈은 문서방의 딸 룡네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으므로 절대 못해준다고 버티다가 대신 문서방의 아내를 데려간다고 설친다. 이를 보고 놀란 룡네가 뛰어나와 엄마를 끌고 가지 못하게 매달리자 인가는 곧바로 룡네를 낚아채서 끌고 가버렸다. 그리고 절대 밖으로 출입을 못하게 막아놓는다. 문서방 부인은 졸지에 무남독녀 외딸을 청인에게 빼앗기고 나서 곧 정신을 놓는다. 매일 비실비실하면서 문서방에게 룡네를 데려오라고 사정한다. 문서방은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인가에게 달려가서 딸을 한 번만 보게 해 달라고 사정하지만 인가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매질까지 한다.
다음날 문서방의 부인이 죽던 날 한밤중에 인가놈의 집에 불이 붙었다. 문서방은 허리에 도끼를 차고 있다. 불이 사방으로 번지면서 숨어있던 인가 놈이 룡네를 끌고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문서방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 인가 놈뿐이었다. 인가 놈을 잡자마자 그대로 도끼로 그놈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그리고 룡네를 끌어안고 운다.
아~ 슬프다. 왜이리도 20세기 소설은 다 슬픈 걸까? 20세기 초반은 나라를 빼앗겨 왜놈들의 수탈에 수없는 우리 민족이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총칼에 죽는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는데 좌우 이념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 정부가 들어섰지만 자격 없는 이승만이라는 인간이 해방된 조국의 백성들을 보도연맹으로 죽이고,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독재로 죽였다. 그 이승만을 국민들이 4.19로 내쫓았지만, 얼마 안 되어 또다시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노태우 독재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20세기는 그렇게 비참했다.
3. 민촌(民村) - 이기영(조선지광 50호 1925.12)
벼 두섬에 박주사 아들의 첩으로 팔려가는 점순이. 부친의 실성도, 모친의 기절도, 오빠의 울음도, 그녀를 좋아하는 서울양반의 무서운 눈도 벼 두 섬의 힘만 못하였다.
돈있는 양반들에게는 벼 두 섬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정도 내주어도 자기들 재산에 축도 나지 않는데 모두들 그냥 보고 있다. 그들은 무관심 또는 오히려 비웃으며 자신들의 넉넉함에 안심하고 있다. 지금도 재산이 몇조는 그만두고 몇천억, 몇백억씩 되는 자본가 나리들,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된다고 그들의 재산에 조금의 영향도 없음에도 나라가 망한다고 지랄 엠병을 한다. 거기에 정치인들, 기득권층도 모두 합세한다. 그러니까 잘 찍자.
4. 서화(鼠火) - 이기영(조선일보 1933.5)
제목을 왜 굳이 한자로 썼는가 모르겠다. 그냥 쥐불놀이라고 썼으면 더 좋겠는데. 하여간 옛부터 정월 대보름 즈음해서 쥐불놀이가 성행했다. 그리고 망우리도, 달집 태우기도. 내가 어렸을 적에도 싸움까지는 아니었지만 논.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산불 위험도 있고, 오히려 쥐불을 놓으므로 익충까지 죽어서 더 나쁘다고 한다.
1920~1930년대는 왜놈들의 조선 수탈이 본격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었다. 산미증산이니, 국가의 재산(역둔토 등)을 자기들 마음대로 빼앗아 동척에 주고, 동척에서는 임대권을 왜놈들에게 주고, 그 왜놈들이 조선인에게 소작을 주는데 각각의 세가 지나치게 많아서 점점 농촌은 팍팍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돌쇠는 빈궁기에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놀음을 배웠다. 동네에 좀 모자라는 응삼이가 소 살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를 꼬드겨서 그 돈을 다 따버렸다. 응삼의 아내는 이쁜이인데, 욕구불만인 이뿐이는 힘 좋은 돌쇠에게 빠져 정분이 났다. 거기에 면서기인 원준은 저도 놀음도 하고 남의 여자를 간통하기를 밥먹듯이 한다. 그러다가 이쁜이에게 흑심을 품고 돌쇠와의 관계를 고자질하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오히려 이쁜이에게 된통 당한다. 그래서 마을회를 소집하여 돌쇠와 이쁜이를 벌주려다가 자신의 행위가 들통나서 원준의 계획은 무산된다.
돌쇠와 이쁜이는 함께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돌쇠는 "우리도 스스로 선택한 사랑을 찾아 자유연애하고 결혼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 보았으면" 한다. 그 시절에는 당사자간에는 보지도 못하고 부모가 혼인 상대를 결정하거나 돈이 없는 경우에는 돈에 팔려 늙은 홀아비에게 가거나 아님 응삼이처럼 덜 떨어진 남자에게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이쁜이도 응삼이네가 땅 마지기나 있기에 벼 몇 섬에 팔려 왔던 것이다.
5. 과도기 - 한설야(조선지광 84호, 1929.4)
간도로 살러 갔다가 그곳도 왜놈, 되놈의 등쌀이 심해 견디지 못하고 고향 함흥으로 돌아 왔지만, 함흥 비료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통째로 집단이주 당하고 약속했던 항만은 건설해주지 않고 있어 간도로 가기 전보다 더 비참한 고향을 본다.
결국 주민들 중 힘쓰는 젊은 사람들은 비료회사의 노동자로 들어가고 늙은 사람들은 울 안에 있는 밭을 가꾸거나 아니면 마을 앞바다에서 작은 고기나 잡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업단지개발, 골프장, 택지개발등으로 서민,빈민들은 밀려나고 그 이익은 엉뚱한 놈들이 다 차지한다. 지금은 골프장은 공공사업에서 빠져서 대상이 되지 않지만... 대장동 사업이 그렇게 된 것이고 부산 엘시티, 서울의 재개발 모두 비슷비슷하다.
6. 이녕(泥濘) - 한설야(문장4호 1939.5)
이녕은 진창, 진흙탕, 엉망진창 같은 뜻이렸다?
민우는 약한 성격이면서도 제 맘에 못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한 때 그 서슬에 눌리고 무섬을 타면서도 한 대목 늦어지면 속으로라도 욕하고 미워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내는 오새 세상이란 그저 싫거니 좋거니 덮어놓고 닷냥금으로 가리지 말고 두루뭉술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우는 실지에 있어서 아내의 말대로 그저 그렇게 벙어리 3년, 장님 3년 격으로 비위 상하는 일이라도 그런대로 보아 가고 때로는 속에 없이 남 좋다는 대로 좋다, 옳다 하고 꾸벅꾸벅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아니꼬운 꼴,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속으로 이따금 혼자 용골 때를 부려보고 하다못해 남 안보는 그늘에 가서 침이라도 뱉어줘야 맘의 한구석이 좀 들린다. 내 생각엔 이런 사람들 덕에 세상은 조금이라도 진보하는 것이다.
그는 다섯 명의 자식들이 어디 가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얻어터지며 울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짜증이 확 밀려서 아이들에게 그들과 맞붙어서 왜 두들겨 패지 못하고 울면서 들어오느냐고 역정을 내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모두 자신가 같아서 오히려 짜증이 나는 것이다.
7. 낙동강 - 조명희 (조선지광 69호. 1927.7)
사회 운동가. 농민 운동가의 삶과 마지막 가는 길, 그리고 그와 함께 운동에 나선 여인의 다짐을 그렸다. 형평사 운동가가 열심히 운동하다가 감옥에 갇혀 신병이 중하게 되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는 고향에 가서 얼마 안 있어 유명을 달리한다. 그리고 남은 동지들은 더욱 꿋꿋하게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요즘 노동운동가들의 삶과 비슷하다. 요즘도 노동열사들이 계속 죽어나간다. 슬픈 일이다.
8. 어촌 - 이익상(생장 3호 1925.7)
매양 배를 타고 고기잡이 가는 어부의 생명은 바다에 내어 놓는 것이다. 성필이도 아내와 아들의 바양을 받으며 새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 그날 밤에 폭풍우가 몰아쳤고, 성필이는 행방불명되었다.
소설이니까 그렇겠지만 그때라고 바로 그날 저녁에 태풍이 온다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몇 백 년간 고기잡이를 해왔던 어촌에서는 하늘과 바람의 냄새만 맡아도 그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마을 거의 전체가 울음바다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또 혹시나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모습으로 집을 찾아오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슬프다.
9. 석공조합 대표 - 송영(문예시대 2호 1927.1)
박창호는 석공이다. 그리고 아내는 고무공장 노동자이고, 아버지는 석공장 사 장 네 과원을 부쳐먹는 농민이다. 박창호는 석공들 모두의 추대로 조합대표가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무슨무슨 지회장 정도 되겠다. 어느 날 서울에서 석공 노동자 대회가 열린다. 사장은 서울에 가지 말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그냥 일이나 하면 됐지 무슨 되지 않게 노동자대회를 하느냐고 한다. 아버지는 내키지 않지만 아들에게 안 가면 안 되느냐고 한다. 만일 가게 되면 아들은 공장에서 해고되고, 자신이 부치고 있는 과원도 빼앗기고, 집에서도 쫓겨날 수 있다고... 그러나 창호는 노동자대회에 참석하러 갔고, 대회는 며칠간 계속된다. 노동자대회가 마무리되는 같은 시각, 공장 사장 놈은 박창호네 부친이 부치던 과원을 빼앗고 집에서 내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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