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가 부모님의 실전적 경험을 소설로 쓴 것이라고 한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로 '아버지의 해방일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숲의 대화' 등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25세에 썼다는 빨치산의 딸을 읽었다. 아버지의 행방일지에서도 나타나듯이 정지아 작가의 부모님들은 진정한 사회주의자로서 몸소 실천한,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
「우리에게 '사회주의' 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갈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 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썼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좌파주의도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킨다. 그 말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 7-80년대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 그 이후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정의당, 노동당, 진보당 등 좌파운동을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신념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의 상층부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소련과 중국의 권력 핵심부는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민중을 배반했고, 민주주의 정권에서도 역시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과 좌파운동을 했던 조직의 상층부들도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을 배신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스탈린이나,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일성 3 부자 등이 진정한 사회주의자였을까? 그들이 진정한 삶이 민중의 더 나은 삶을 고민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진정으로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생각했다면 어떻게 중동 전쟁을 일으키고,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용인할 수 있을까?
"목적이 왜 없었겠냐. 더러 그런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조국을 미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휴전 무렵에 가서는 지시산을 무대로 한 무장투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기다리는 건 이름 없는 죽음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죽으면 다음 세대가,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싸워 주리라고 믿었다. 그런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목숨까지 초개처럼 버려가면서 그 악조건을 견딜 수 있었겠냐?"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의문은 책을 끝까지 읽을 동안 계속된다. 도대체 그들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가면서, 굶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점점 조여오는 국군의 '소탕' 작전 속에서도 그들은 항상 '조국을 미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쳤다. 나는 그들의 진정한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존중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그것. 그러나 그들이 신조처럼 외쳤던 그 신념의 종주국인 소련 공산당의 핵심, 북조선 노동당의 핵심자들은 이들의 신념을 배신했다. 결국 민초들은 항상 배신을 당하는 것일까? 지금, 그러니까 2024년에도 역시 민중들은 자칫 배신당하기 일쑤이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보를 빨리 취득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현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하겠다.
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대승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연합) | 175 |
국민의힘(미래) | 108 |
새로운미래 | 1 |
개혁신당 | 3 |
진보당 | 1 |
조국혁신당 | 12 |
선거 6일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 야권이 200석을 넘긴다는 예측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나니 부울경의 보수가 결집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결집을 했을까? 부울경의 보수들은 전부 갑부가 아닐 텐데... 윤석열 정권의 개차반 같은 국가 운영을 보고도 결집을 한다는 것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설의 내용>
1부는 작가의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었던 남로당, 특히 전남도당의 빨치산 이야기, '조국이 부른다' 로
2부는 작가의 어머니가 소속되어 있었던 남부군의 이야기 '지리산의 영웅들'이다.
소설 속에서 보면 작가의 아버지 유혁운(가명)은 일제 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철도청에 입사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좌익들의 활동을 도와주면서 운명처럼 사회주의자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평양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일이 잘못되어 다시 구례구역으로 돌아왔다가 입산을 하고 주로 당 생활을 한다. 여순 반란사건으로 일시적인 '해방구' 경험을 하다가 다시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고, 그러다가 6.25 전쟁으로 또다시 '해방구' 경험, 9.28 후퇴로 다시 입산, 곡성군당 위원장,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지하침투 명령을 받고 나갔다가 체포,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로 감형을 받는다.
그런데 1948년 당시 남로당은 이미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불법화하였기에 지하 조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입산하여 투쟁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조직에 대한 명령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에는 그나마 중앙당과 연락선이 닿았겠지만 나중에는 정보가 제한되고 사람이 연락하다 보니 명령문이 탈취되기도 하는 등 정보의 혼란이 많았던 것 같다. 유혁운의 이동상황을 보면 수시로 소환되고 보직이 수시로 바뀐다. 한 자리에서 적어도 1년 반 이상은 되어야 노하우도 쌓이고 그럴 것인데 너무 자주 바뀌었다. 유혁운 뿐 아니라 당시 남로당의 지하조직이 그렇게 운영되었나 보다. 더구나 남로당 조직은 북로당의 조직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투쟁이 전개되었나 보다.
2부 지리산의 영웅들
작가의 어머니 이옥자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팽개치고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까지 갔고, 잠깐 살다가 다시 구례로 돌아왔다. 돌아온 어머니는 병으로 급사하였고, 서당을 거쳐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녀는 더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접힌 채 최규복(최윤호)에게 시집을 왔다. 남편 최규복은 다정다감한 청년이었으나 곧 좌익활동에 빠졌다. 비록 정도 없었으나 그런 남편 때문에 함께 온 가족이 탄압받게 되면서 입산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자로 되어 남부군 정치 지도원으로 활동하였다. 남부군 역시 남로당 중앙당과 연락이 시원치 않아 6.25 전쟁이 터진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후방교란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 이후 연합군의 인천상륙 작전으로 북한군이 퇴각하자 그때서야 평양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평양도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가 겨우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남쪽으로 전선이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후평'에서 900여 명의 유격대로 편성되어 다시 남하한다. 태백산맥을 타고 남하하다가 소백산으로, 속리산으로, 덕유산으로, 그리고 지리산으로 이동한다.
하루하루가 목숨을 내놓은 전쟁터였고, 공식적인 부대도 아니고 유격으로, 보급투쟁을 하면서 남부군 최고 지도자 이현상, 박종하의 지도로 활동한다. 그들은 이미 전황이 무너지고, 소련과 미국이 휴전 협상 중임에도 계속해서 " 조국을 미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외치며 반드시 해방은 온다. 해방이 되면 자신들이 인간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사실 이미 북한에서는 남로당 고위관계자(박헌영 등)를 미제 간첩협의를 씌워 숙청하고, 남부군이야 있건 말건, 남로당 잔당들이 지리산에서 죽어가건 말건 관심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독점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약 7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생각이 과연 지금의 북한실정을 염두에 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서두에서 본 것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기대했을 것이다.
「빨치산들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기필코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동지들이 피지도 못한 청춘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거두어들인 것이다. 」 - 빨치산의 딸에서
해방 후 미군이 우리 민족들이 스스로 만든 인민위원회를 인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도록 지원하며 일제의 잔재를 청산토록 하고, 토지제도, 곡물정책을 제대로 했더라면, 그러면서 왜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좋은지 제도로 보여 주었다면 우리나라 근대의 비참함은 없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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