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2007, 홍성원, 신상웅, 최창학)
홍성원 - 즐거운 지옥, 흔들리는 땅
신상웅 - 분노의 일기, 돌아온 우리의 친구
최창학 - 형(刑)
1. 즐거운 지옥
화자는 소설가이며 H로 명명된다. H를 비롯한 다섯 명의 문학인들이 모여 하루를 지내는 이야기다. 6-70년대 소설가들이 매우 가난하듯이 이 소설 속에서도 여전히 소설가는 가난하고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평론의 세계에서는 이를 가리켜 '소설가 소설'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소설가를 비롯한 문인 친구들이 술집에 모여 그저 그런 이야기를 떠들고 각자 자기의 굴로 돌아가는 이야기. 빈곤한 소설가는 항상 고민한다.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아늑한 세상에서 살아갈까? 그러다가 또 자신이 선택한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스레 또다시 시작한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자기의 인생이 '글 감옥'에 갇혀 산다고 했다. 소설을 구상하고, 실제 이야기로 풀어내기란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닐 것이다. 또 어느 정도는 작가의 기질을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닐까?
2. 흔들리는 땅
70년대 초 서울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단 버스가 있겠고, 손님들이 있겠지. 그리고 운전수가 있는데 운전수는 그래도 당시만 해도 고급 인력이라 생활이 안정되어 이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버스에는 조수와 안내양이 있다. 버스에 올라타서 싸구려 물건을 파는 사람들. '갸바이'라고 한다. 또 소매치기들이 있다.
이런 모습은 비록 서울 뿐 아니라 내가 초. 중학교 다닐 때까지 시골 버스터미널에도 있었다. 안내양과 조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있었고, 버스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도 스무 살 초반까지도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은 하루종일 일을 해도 돈이 벌리지 않는다. 아니 돈을 좀 벌어도 먹고, 자는데 쓰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비참했던 시절의 밑바닥 인생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터미널 경영자 측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터미널에 기생해서 사는 사람들을 분리 지배한다. 안내양들이 버스수익금을 삥땅 못 치게 몸을 수색하다가 과하게 수색한다. 버스 안내양들이 이에 반발해서 승차거부를 한다. 안내양들의 단체행동을 분쇄하기 위해 터미널에서 기생하는 '갸바이'들과 '조수'들을 동원해서 강제 진압한다. 이런 난리통에서 남숙이라는 안내양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평상시에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무리들이 자본의 분리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그들의 논리에 동원된다.
버스터미널은 환경정화를 이유로 안내양들의 단체행동에 동원됐던 갸바이들의 출입을 막는다. 결국 그들도 이에 이용이 된 것이다. 버스에는 언제부터인가 안내양이 사라졌고, 또 조수도 사라졌다. 물론 갸바이들은 먼저 없어졌다.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갸바이들이 없어지는 것은 좋았지만 안내양과 조수가 없어지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버스의 수익금은 늘었을 테고, 그 수익은 모조로 버스 경영자에게 돌아갔겠지.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참으로 열악해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전에는 노동법은 그냥 전시만 해 놓는 법이었다. 86년6월항쟁이 번지면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고, 그나마 노동법이 실체법으로 등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3. 분노의 일기
미군에 복무하는 카투사의 부조리, 그리고 미군들이 바라보는 한국인에 대한 멸시, 이에 대항하여 한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려하는 김대위. 그러나 그런 부조리는 말단 부대에만 있는 게 아니고 당시 군부 내 상당히 높은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카투사가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제대로 된 군기와 부정한 짓을 저지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분간 외출. 외박을 막았는데, 한쪽에서는 외출. 외박증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한국군으로 복귀시키려고 상신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협박뿐이다. 그리고 문제의 미군과 카투사간 싸움이 벌어져 미군이 다쳤는데 미군은 카투사를 완전 무시하고, 자신들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는 투의 이야기에 분노한다.
요즘음 어떤지 모르겠는데, 미군의 생각은 많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에서 부터 말단까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시절 미군 주둔병에 대한 부담액을 턱없이 많이 요구하지 않았나? 사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고, 북한을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문재인 대통령 초기에 판문점에서 남북간 지도자가 만났을 때 곧 좋은 시절이 오겠거니 했는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망쳤다. 물론 코로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비서관 존 볼턴, 이 새끼와 왜놈들이 방해한 것도 이유다. 만일 남북이 서로 전쟁의 위협이 없이, 다른 나라를 드나들 듯이 서로 여권을 통해 남북이 제한 없이 여행할 수 있다면, 그리고 경제협력도 되고, 정치 협력도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미군이 이 땅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4. 돌아온 우리의 친구
역시 70년대 이야기, 건설 현장에서 뼈빠지게 일했다. 그런데 임금이 서서히 체불된다. 그때 어머니가 췌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사정사정해서 10만 원의 임금을 먼저 받아서 어머니 수술비로 전달했다. 그 10만 원이 밀린 임금을 주면서 자본가는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 동료들에게 회사는 아무 일 없을 거란 소문을 퍼 뜨리는 것일 게다. 그다음 날 회사는 모두 날라버렸다. 하청에 재하청, 재재하청, 재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부조리 속에서 피해 보는 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었다. 젠장~ 그래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직사게 두들겨 맞았서 입안이 다 터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열사의 나라, 중동 건설현장에 갔다. 2년을 일하고 휴가를 받아 돌아온다고 했던 친구가 휴가를 포기하면 그 비행기삯과 보너스를 준다는 회사의 꼬드김에 따라 휴가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 사고로 죽었다. 친구는 높은 급수탑에 페인트를 칠하는 페인트공이었다. 친구는 높은 급수탑에 페인트를 칠하다 보면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땅 밑으로 뛰어내리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렇게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뼈가루만 돌아왔다. 내 외삼촌도 중동에 4년인가 다녀오셨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 많은 분들이 중동 건설현장에 가서 고생들 했다. 그들의 고생에 비해 이명박 같은 인간이 너무 많은 이득을 차지했다.
5. 형(刑)
이종사촌간, 필자보다 3일 먼저 태어난 이종사촌 형은 원칙과 측은지심이 있고 또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다. 필자 역시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데 좀 더 현실적이다. 둘의 아버지는 지자체 공무원이었는데, 6.25 전쟁 시 북한 공산군이 패퇴하면서 창고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죽임을 당했다. 그 뒤 어찌어찌 필자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이종사촌 형은 떠돌이 행상을 하다가 정신 이상이 되어 범인으로 붙잡혀 정신감정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필자는 항상 원칙과 측은지심을 행하는 사촌 형에게 이상한 열등감을 느꼈다. 제목에 한자를 가로 넣기를 했지만 어찌 중첩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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