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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숲의 대화 - 정지아

by 수레의산 2024. 2. 8.

(은행나무 2013.2)

 

1. 숲의 대화

   빨치산에 갔다가 죽은 도련님, 그를 따라갔다가 아이를 임신한 채 하산한 순심이, 그리고 그녀를 아내로 품고 살아온 운학이.  죽은 아내를 뿌린 백운산 한재를 찾은 늙은 운학이는 젊어서 죽은 도련님과 비몽사몽간에 대화를 나눈다. 

 

   부족할 것 없이 살아온 양반님네 도련님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빨치산에 빠졌다. 그 양반집의 하녀로 태어나 살아온 순심이는 그런 이념 없다. 자신이 하녀인지, 노비인지 그런 건 상관없다. 그저 도련님을 사모하여 그냥 산으로 따라 들어간다. 전세가 어려워지자 도련님은 아이를 임신한 순심이와 뱃속의 아이를 살리고자 하산하여 자기 집 하인으로 있던 운학이를 찾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념도, 사랑도 아닌 운학이는 그런 순심으로 아내로 맞이하여 남의 아이까지 키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작가가 생각하는 바는 무엇일까? 작가는 빨치산의 딸인데. 그런 봉건 질서를 좋다고 볼 사람은 아닌데...

한 사람은 이념으로, 또 한 여자는 사랑으로, 또 한 남자는 무엇으로 살았을까?

 

  갑자기 백운산 한재가 가고 싶다. 백운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있는 산이다. 한 때 산에 빠져서 100대 명산의 거의 다 다녀왔지만 백운산을 나중을 기약하고 그냥 뒀었는데 이번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2. 봄날 오후, 과부 셋

   사다꼬- 사회주의자, 원칙주의자, 주관이 뚜렷한 이상주의자,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어머니, 현실의 작가와 비슷

   에이꼬 - 현실주의자, 적극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여자, 현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

   하루꼬 - 소심하고, 사랑에 빠져사는 조용한 사람. 세상의 모든 일과 담쌓고 살고 싶은 현실 도피형 인간?

 

  셋은 일제시대 보통학교 동창이고 한 마을에서 살아온 친구들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80대가 된 세 노인들이 모여서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살고 있다. 서로를 질시하고, 사랑하고, 지금도 성격대로 살고 있다.  이렇게 늙어서도 아옹다옹 그렇게 살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불알 친구들끼리 모임을 했었는데 몇 년 전에 깨졌다. 원래  12명인데, 여자가 세 명이고, 나중에 한 명이 이사 와서 13 명이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빠지고, 남자도 나중에 들어왔던 친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중 남자 두 명은 아주 연락이 끊어졌고, 한 명은 뭔가 틀어져서 모임에 참여를 아니해서 6명이 모였었다. 그러다가 그게 깨졌다. 허전해서 작년, 그러니까 2023년에 다시 의사가 있는 다섯 명을 다시 모았다. 그런데 두 녀석이 경비일을 하고 있다. 한 명은 낮에만 근무하고, 한 명은 24시간 교대 근무다. 그러다 보니 연말에 모임이 무산되고... 근데 또 한 명이 함께 못하겠다고 한다. ㅠㅠ  어찌해야 하나?

 

  소설속의 여인들은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도 함께 노는데, 우리는 왜 안될까?

 

3. 천국의 열쇠

    알콜 중독자 아버지, 그 아버지와 뇌성마비 주인공을 평생 돌보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뇌성마비로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주인공은 어머니가 생존 시에 가르쳐 준 대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익히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옆집에 주정뱅이에 폭력 남편과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여성 호아. 그 호아는 아이를 낳고도 매번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다.  그런 호아를 향해 자신의 몸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따뜻한 손을 내민다. 

 

   비록 신체는 멀쩡하지만 정신이 썩은 사람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육신은 병들었지만 정신만은 순수하고 멀쩡한 장애인. 그는 헛개나무를 키우면서 그 아름다운 향기에 취할 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정말 훌륭한 인간이다. 

 

 

4. 목욕가는 날

    80이 넘은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다. 관절염도 있다. 그 엄마를 돌보는 큰 언니, 목소리는 괄괄하고 다소 어수선하지만 이정만은 넘친다. 그리고 매사에 완벽해야 하고, 나와 남의 경계가 뚜렷하고, 나름 엄마의 입장에서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작은 딸. 그녀들 셋은 그렇게 목욕탕에 때를 밀러 간다. 작은 딸은 벗은 모습을 10살 이후 처음 엄마와 언니 앞에 보여준다.  엄마 역시 80이 넘은 나이에도 벗은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워 앞을 가린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아마도 70대 중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여 소변 줄을 끼울 때 엄청 부끄러워했다고 아내해로부터 들었다. 우리 엄마는 3녀 2남을 두셨다. 아버지는 엄마 50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함께 산 세월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신 세월이 더 길었다. 

 

    엄마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딸내미 셋이 모여서 엄마와 함께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들은 엄마가 불편하시다는 핑계로 감히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딸들은 그런 불편을 다 감수하고 함께 여행을 갔다. 더구나 누나도 역시 몸이 불편했는데도 말이다. 역시 딸이 있어야 한다. 아들 그까짓 거 아무 소용이 없다. 옛날에는 아들이 믿음직하다고, 또 가계를 잇는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들이나 딸이나 자기들 인생이 있고, 지들끼리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요즘 가계를 잇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 생각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들이 더욱 생각난다. 

 

5. 브라보 럭키 라이프

    착하고 공부잘하고 장래가 총망되던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아들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던 날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산소 호흡기를 떼라고 해도 한가닥 기적을 믿는 부모는 아들이 깨어날 것이라고 믿으며 23년간을 한결같이 병구완을 했다. 

 

    드디어 기적이 생겨 의식이 돌아왔다. 근데 다만 의식만 돌아왔다. 사지 육신은 여전히 마비상태. '행운의 사나이' 란 별명을 들으며 기적이 다시 한번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동안 남은 재산마저 모두 팔아 이제는 생보대상자로 전락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기적을 바라며 아들을 수발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에, 물론 소설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6. 핏줄

    배우면, 아는게 병이 되어(일제 때 아는 놈이 재판소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가 끊기는 것을 체험한 아버지는 아들을 농업고등학교 졸업시키고 곧바로 농사를 짓게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촌에서 농사짓는다고 40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다. 고심 끝에 그래도 같은 조선족을 선택해 보았으나 애초에 조선족은 돈만 받아먹고 튀었다. 그다음이 태국처녀, 필리핀 처녀를 선택했지만 역시 게으르고 농사일을 못해, 집으로 돌려보내고 드디어 베트남 여성을 며느리로 맞았다. 베트남 며느리는 일도 잘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가계에 베트남의 가무잡잡한 혼혈아이로 이어진다는 게 영 찝찝하다. 드디어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아~~~ 가무잡잡한 아기의 얼굴을 보고 기가 막혀한다.

 

    대를 이어가려고, 핏줄을 이어가려고 생때같은 아들을 농촌에 처박혀 일을 하도록 했는데 그게 결국은 덫이 되어 자신에 이르러서 핏줄이 순수성이 끊어졌다고 탄식한다. 

 

   그런데 사실 베트남 여성은 가무잡잡하지 않은데?  그리고 요즘 같은 세대에 핏줄의 순수성이 무에 그리 중할까?

 

 7. 혜하동 로터리

    비극적인 시대, 비극적인 생을 살아야 했던, 6.25당시 미군복무자와 인민군 복무자가 늙어 함께 사는 이야기. 이념? 그까이꺼 권력 잡은 놈들의 놀음인 것을.. 그래서 80이 넘은 두 주인공은 여전히 친구로 지낸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다. 오늘도 혜화동 로터리에는 수많은 차들이 돌아간다. 그 돌아가는 자동차에 이념이 있나?

 

8. 인생 한줌

    희망? 희망이라는 허상을 쫒는 옥성 씨.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 그러나 마침내 그 희망은 허상임을 알고 허탈해한다. 희망이 보일 때는 열심히 하지만, 그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좌절하겠지.

 

9. 즐거운 나의 집

    귀촌해서 낭만적인 생활을 꿈꾸는 도시출신 기자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야기. 시골생활은 녹록하지 않다. 농촌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끈끈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갑자기 들어가서 평화롭기를 기대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을까?

 

    예전에 작은 면의 장으로 근무할 때 리장님들께 마을로 이사 오는 도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겠다. 원주민과 입주민간의 갈등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 발생하지 않을까?

 

10. 나의 아름다운 날들

    일단 재수 없다. 우리나라의 소위 부자들의 인식을 부자들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이다. 소설 속의 김여사 아버지는 친일파,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냈고, 자유당시절 장관을 지냈고, 박통시절에 또 장관으로 퇴직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남편 역시 장인의 후광을 얻어 장관까지 지냈다. 

 

    친정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군수를 지낸 것이 무슨 친일이냐며 큰소리친다. 그리고 장관 재직 시 뇌물을 먹은 것에 대해 요즘 용산의 어떤 인간처럼 주는 것을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아버지는 다만 사람 좋아하고 정도 많아 곤경에 처한 사람 그냥 못 지나가고 도움 필요하다는 사람 뿌리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문제가 됐던 포드 승용차만 해도 아버지가 구입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 소개 덕에 미군과 선이 닿아 김여사네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둔의 팔촌이 고맙다며 성의 표시로 사 주었을 뿐이다. 아버지 말마따나 사람 간의 정이라는 게 있는데 고맙다는 인사까지 거절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씨부린다.  아, 씨발 진짜!

 

11. 절정

    슬프다. 꿈을 잃은 삶, 아니 버렸다고 해야 하나? 

나의 아름다운 날들의 김여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도 노숙자들을 이해하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