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프지만 아름다운 땅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계 제1차 대전의 발발지가 되었던 곳, 사라예보가 있는 나라이다. 발칸반도 자체가 여러 민족, 여러 종교가 뒤섞여 갈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발칸반도는 로마가 동 로마와 서 로마로 쪼개지면서 위쪽에 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서쪽에 있어 가톨릭으로, 세르비아는 정교로 나뉘었다. 그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오면서 그들이 점령한 곳은 또 이슬람으로 섞인다. 보스니아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과 접경이 되어 일부는 가톨릭, 일부는 정교, 일부는 이슬람 등 종교가 혼재되어 있고, 서로가 이웃으로 잘 살던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사회주의 나라인 유고슬라비아로 일단 봉합되었으나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유고슬라비아도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크로아티아에서 한번, 세르비아에서 한 번씩 인종청소 만행이 저질러졌었던 곳, 거기 사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도 야만적인 악행을 저질렀을까?
2. 가해자와 피해자 두얼굴을 가진 세르비아
세르비아는 러시아 계통의 정교회가 국교인 나라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때 중심이었던 국가. 그들은 대 제국의 야욕을 항상 가지고 있던 나라다.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도 세르비아 민족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하면서 발발이 되었다. 물론 더 큰 원인인 제국주의 팽창이 있었지만.
세르비아보다 먼저 대 크로아티아를 노리고 세르비아계를 인종 청소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에 집단적 피해의식이 세르비아 민족들에게 있었기에 그들도 역시 카톨릭계와 이슬람계 인종 청소의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겉으로는 종교 갈등이라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에는 정치인들의 권력욕이 작용한 것이다.
「세르비아에게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잃어버린 20년’이다. 1980대 말 공산권이 붕괴할 때만 해도 세르비아는 이웃 헝가리보다 10년 이상 경제가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헝가리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헝가리의 1/3에 불과하고, 전체 GDP도 헝가리의 1/4 수준인 451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웃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결과다. 역사적 과오와 ‘대세르비아’를 외치던 편협한 민족주의의 덫에 걸려 오도 가도 못했다.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지금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한 이유다. 멀쩡한 국가를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민중들은 도탄에 빠지고, 이웃이었던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그런 악마같은 지도자에게는 절대 국가권력을 위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르비아에서 일본의 얼굴이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우익 세력은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이웃나라들에 대한 침략전쟁과 약탈은 감춘 채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매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에 맞춰 전범들이 합사 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
난 그래서 일본이 싫다. 왜 과거를 반성하지도 않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알고 있는 일본과 우리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의 윤석열과 국민의 힘 의원들은 왜 그렇게 친일을 못해 안달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 잠깐! 미국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비판좀 하자. 말은 패전국에 점령당한 민족들은 민족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그의 주장은 일견 옳게 들리나 그것은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빼앗기 위한 핑계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은 민족자결주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왜? 그곳은 1차 대전 전승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이 생겨 3·1 운동을 벌였지만 무자비하게 진압당했고 해방은 뒤로 미루어야 했다.
3. 낭만과 야만의 종결자, 크로아티아
폴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나라다. 이 나라도 무서운 역사를 갖고 있다.
『나치즘과 파시즘에 동조한 우스타샤는 자국 내의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를 몰아내고 이웃국가에 사는 크로아티아계와 힘을 합쳐 인종적으로 순수한 민족국가를 설립하고자 했다. 우스타샤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 가지 무시무시한 전략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세르비아계의 1/3은 추방해 인종적으로 청소하고(ethnically cleansing), 1/3은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고(forcibly converting to Catholicism), 개종을 거부하는 1/3을 아예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종청소는 크로아티아가 먼저 했다. 물론 그것도 크로아티아와 이웃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계와 이슬람계를 살해했다. 그 결과 세르비아계는 집단적 피해의식이 있었고 이를 국가 권력자가 이용하여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로 이어졌던 것이다. 애꿎게 그것도 역시 대부분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했다. 또 이때 아드리아해의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가 집중 공격을 당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크로아티아는 불안정하다. 전직 총리 등 지도자들은 수십억 달러의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크로아티아를 ‘마피아 국가(mafia state)’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권이 국가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언론도 통제하고 있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크로아티아를 ‘발칸식 도둑정치체제(Balkan-style kleptocracy)’라고 부른다.』
어느 나라나 국가 지도자가 중요하다. 시스템? 그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지도자들이 사익에 빠지면 나라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우리나라도 그랬지 않은가? 이명박이 그랬고, 박근혜가 그랬다. 물론 그 이전의 군사정권은 물론 더 했고,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있으면 청렴했고 나라가 많이 발전했다. 문재인 정부 때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막 생겼었다. 그러나 지금 2022년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되면서 나라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다. 대중국 무역이 계속 적자이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있다.
발칸의 여러 나라는 지금도 경제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로마가 지배했고, 오스만튀르크가 지배했었고 오스트리아가, 러시아가 지배했었다. 그러다 보니 카톨릭 세력, 정교회 세력, 이슬람 세력들이 혼재되어 있는... 그런.
4. 전쟁을 잉태한 아름다운 땅, 오스트리아
이제 동유럽이다. 이 동유럽이라는 말 자체도 영국과 미국이 만들어 놓은 언어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영국을 위시한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와 러시아를 위시한 소련의 공산주의가 대립하면서 소련의 위성국가들을 동유럽으로 불렀었다. 지도상 위치적으로 보면 오스트리아 역시 동유럽 지역이지만 그래서 서유럽으로 속해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국가였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결혼을 통해 제국으로 발전했던 나라이다. 다른 제국이 전쟁을 통하여 제국으로 발전한 것과는 다른 경우라고 보겠다. 하여간 오스트리아도 독일과 같은 게르만족, 독일어를 쓰는 나라로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같은 패전국이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예 독일과 한 나라로 됐었는데, 패전하면서 외교를 잘했기에 큰 책임을 독일에게 다 미루었다.
어쨋건 오스트리아는 지금도 예술의 나라로 여겨진다.
5. 대평원이 부른 비극, 폴란드
폴란드는 지역 자체가 평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는다.
『부강한 나라는 더 부강해지지만, 힘이 약한 나라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야 하고 나라마저도 잃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 세력과 일본과 미국의 해양 세력의 틈에 끼어 있는 우리도 폴란드처럼 나라를 잃은 비운을 겪은 바 있다. 발칸반도의 나라들도 그렇다.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역사적 교훈이다.』
지금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운명을 걸고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 멍청한 굥은 미국. 일본에 꼬랑지를 대고 있어 다른 나라로부터 아예 무시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 답답하다. 하여간 폴란드는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생전에 가볼 수 있을까?
6. 불꽃처럼 강렬하게 벨벳처럼 부드럽게, 체코와 슬로바키아
체코하면 프라하의 봄을 떠올린다. 체코에 프라하성, 샤를 교, 체스키 크룸로프에는 가봤다. 체코 아름다운 나라다. 소련의 위성국에서 바웬사 등 여러 지도자들이 독립 투쟁을 벌였다.
8. 건설과 파괴를 숙명처럼 반복한 나라, 헝가리
헝가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년전에 유람선 사고를 당했다. 마음이 아프지. 그곳에 나도 가봤다. 유람선 타고..
헝가리도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은 역사가 있다. 부다와 페스트가 합쳐진 부다페스트. 유람선에서 봤던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헝가리도 독립을 위해 많은 희생을 입었다.
『1956년 헝가리 자유화시위는 큰 상처를 남겼지만, 역사적 의미는 매우 컸다. 소련과 공산당 독재에 억압받던 동유럽 지역의 자유화와 민주화의 열망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68년 이웃 체코의 ‘프라하의 봄’과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 등 동유럽에서 발생한 일련의 자유화 운동의 서막을 장식하는 ‘부다페스트의 봄’이었다. 매년 봉기가 시작되었던 10월 23부터 11월 4일까지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 등 헝가리 전역에서 ‘부다페스트의 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린다.』
헝가리도 자살율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자살률 세계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헝가리도 우리나라 못지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의 말로는 부다페스트, 특히 페스트 지역을 보면 슬픔이 느껴진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사전 지식이 없이 가서 그런지 그런 건 느끼지 못했다. 앞으로 여행을 가려면 그곳 지식을 꼼꼼히 챙겨야겠다.
9. 야만에서 평화를 일군 역사의 이정표, 독일
독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 히틀러를 총통으로 세우고 유대인을 학살한 나라. 그러나 지금은 철저히 반성하고 부지런히 사는 나라. 동서독으로 양분되었던 나라를 스스로 통일한 나라... 참 부러운 나라다.
『히틀러, 스탈린, 호네커… 나치와 공산주의. 이 땅을 가혹하게 통치하던 자들과 그들의 이념은 세월을 따라서 떠나갔지만 베를린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재자들은 다 떠나가고 그 자리에 시련을 이겨낸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가득하다. 로렐라이의 매혹적인 전설과 베토벤·바흐의 선율처럼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베를린.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 하고 평화와 안정의 길을 가고 있다.
‘화해와 공존’의 아이콘, 베를린. 그 찬사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독일 사람들이 아픈 과거를 씻어내고 힘겹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자초한 아픔과 그들이 저지른 과오를 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도시의 곳곳에서 그들이 가고 있는 이 길의 방향을 느낄 수 있다.
베를린 시내를 걷다보면 보도블록 위에 글자가 새겨진 노란 동판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나치 시절에 그 거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과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대부분이 수용소에서 숨진 유대인들이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는 나치시절의 참혹함과 상처를 기억하려는 기념물과 기념관이 있다. 시내 한복판,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에도 유대인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의 자료는 독일 땅에서 2천여 년 동안 살아온 유대인들은 ‘멸종’되어야 할 이방인이 아니라 독일 역사의 한 부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고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 바깥쪽 화단엔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다.
또한 독일 외무부 내 복도 한 면에는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강제 수용소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역사적인 사진이 걸려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의 건물에 자국을 대표하는 총리가 무릎을 꿇은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다. 동독 시절 동베를린 시청이기도 하고 붉은 벽돌로 지었다 해서 이름 붙여진 ‘붉은 시청사’에서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피신한 유대인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독일이 과거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오며_다시 서울에서 화해와 공존을 생각한다
5천 년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 가장 야만적이었던 세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채찍을 맞으며 강제노동의 고통을 당해야 했던 고대 노예제 시대의 어느 한 세기일까? 그럴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대량학살은 기원전 146년에 일어났다. 고대 로마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카르타고(지금의 튀니지)인 50만 명을 살해한 것이다. 이 참혹한 학살은 로마가 왜곡시킨 역사 속에 감춰져 있다가 15세기 고대문서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콜로세움을 꽉 채운 로마 사람들의 광기 속에 수십만 명의 노예가 검투사의 칼날에, 동물의 발톱에 죽어나간 고대 로마시대다. 그러나 고대가 답은 아니다. 그러면 ‘암흑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중세의 어느 한 세기인가? 그럴 수 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간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페스트로도 엄청난 인구가 죽었다. 그러나 그것도 답이 아니다.
인류에 가장 야만적이었던 세기는 바로 20세기다. 불과 십여 년 전 우리가 살고 있었던 세기에 인류 최악의 야만이 자행되었다. 20세기 전반에 인류는 역사상 전대미문의 참혹한 두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이 전쟁에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치즘의 광기로 600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20세기 후반에는 혹독한 사회주의 실험이 인류를 유린했다. ‘숙청’과 ‘강제 수용소’로 대변되는 학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한반도와 중국, 베트남은 이념을 건 내전을 치렀고, 발칸반도에서는 내전과 전쟁이 뒤섞인 유혈분쟁에서 ‘인종청소’의 야만이 자행되었다.
인간의 야만성은 20세기 내내 되풀이되었다. 캄보디아에서, 수단에서, 소말리아에서, 르완다에서, 콩고에서, 아르메니아에서, 난징에서, 천안문에서, 미얀마에서, 동티모르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벨기에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베트남에서, 예멘에서, 리비아에서, 시리아에서… 지구촌 어디에도 야만이 휩쓸고 가지 않은 자리가 없다.
한 세기의 폐허와 야만 앞에서 5천 년 인류의 문명과 낭만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20세기의 야만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야만은 19세기에, 19세기의 야만은 18세기에 잉태된 것이다. 인류가 저지른 야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살자도 독재자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명과 함께 우리 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인류의 역사는 벽돌과 철이 아닌 피와 살로 세워졌다고.
발칸과 동유럽의 역사는 피와 살로 만들어진 세계사의 축약이다. 고대 로마에서, 중세, 세계대전, 냉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까지 2천 년을 아우르는 역사다. 발칸과 동유럽의 역사에는 인류의 문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종교와 인종, 민족과 이동, 건설과 파괴, 전쟁과 학살, 이념과 대립. 인류가 만들어놓은 문명과 부조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종교만 하더라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정교, 가톨릭, 개신교 등이 총망라되었다. 인종적으로는 슬라브, 게르만, 라틴, 터키, 몽고, 흉노 등이 경쟁을 벌였다. 종교와 인종,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게 뒤섞여 야만의 20세기 중에서도 최악의 야만이 발칸과 동유럽에서 발생한 것이다.
인류의 문명과 야만이 축약된 발칸과 동유럽의 역사는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도 알려주고 있다. 그곳에서의 비극은 ‘집단적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상처에 대한 ‘기억’이 종교와 민족이라는 기재로 인해 ‘집단화’되고, 그 ‘집단적 기억’이 정치적 수요에 의해 ‘집단적 증오’로 발전되고, 그것이 교육의 메커니즘을 통해 확대·재생산되어 20세기 최악의 야만이 발생한 것이다. 자기 종교나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의 종교와 민족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조장된 것이다.』
이의 해답은 '화해와 공존' 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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