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걸어서 국토종단 - 12일차(정읍 - 신태인)

수레의산 2019. 3. 11. 17:00

2019. 03. 11.

 

오늘의 여정

정읍역-농지쪽 벚꽃로-GS칼텍스 앞(우)-사거리(직)-벚꽃로-도매시장사거리-1시방향(황토현로)-농소1육쿄-녹두다리-우측농소농공단지-망제사거리(직)-동곡중앙길-덕천로-황토현교차로(좌)-동학농민기념관-다녀와서-계속덕천로-삼거리(좌)-황토현로-우측 동아철재자원-좌측이평초등학교-초등핵교전 우측 말목장터로-좌합류도로-말목장터로-만석대교-우령교-동광정미소앞삼거리(우)-정신로-신태인육교-레이시모텔 총17.6km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안해에게 연락이 왔다. 발치를 했는데 자꾸 피가 나온다고. 놀래서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피는 조금 나오다가 곧바로 지혈이 되었다. 일요일까지 경과를 지켜보다가 괜찮은것 같아 오늘 다시 시작한다.

 





이침 일찍 열차를 타고 정읍으로 와서 신태인까지 걸어왔다. 국토종단의 원칙중에 하나로 가능하면 4차선 이상의 길은 피하고 2차선 이하나 지방도,군도 등을 이용한다이다. 그리고 도중에 문화유적 등을 만나면 보고 간다는 것이다. 오늘도 길을 찾다가 엉뚱한 길도 이용하고, 동학농민기념관이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찾아가 헛걸음을 했다는 것이다. 뭐 그래도 황토현 동학전적지는 봤으니.

  황토현 전적지는 동학농민이 관군에게 큰 슬이를 거둔 곳이라네.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군이 1894년에 고부관아를 습격하여 조병갑을 응징했다. 1894년 5월에 이곳에 진을 친 동학농민군이 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곳이라 하여 기념관을 지어놓고 전봉준 녹두장군 동상도 만들어 놓았다. 맞은편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바라볼때 기와집으로 되어 있어 설마 나라에서 저렇게 기와지붕으로 하지는 않고 뭐 관군기념이나 그런줄 알았는데 후대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일부러 이평면엘 들러 밥을 먹고(7,000원). 말목장터도 봤다. 둰래 말목장터는 '말못' 이었는데 말목으로 바뀐것 같다는 설명도 있다. 예동마을을 지나면서 도로변에 만석보 해체기념비가 서 있다. 이 만석보는 조병갑이 군수로 있을데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해 뻔히 있는 '민보'를 두고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만들고 수세 명목으로 농민들을 수탈해 동학농민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농민들이 일부를 파괴하였고, 1898년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가 나머지를 혁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혁파 선정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실 혁파선정비는 군수에게 줄 것이 아니고 동학농민군에게 줬어야 하는게 아닐까? 만석보는 정읍천과 동진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세웠던 것 같다. 현재에도 그곳에 유허비가 서 있다. 그 제방에서 보니 엄청나게 넓은 뜰이 보인다. 고부군수는 그냥 수탈하지 않고도 충분할 수 있었는데 그 개인적인 욕심이 국민과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정읍천과 동진천이 만나니 철새가...

▲ 고부군수 조병갑은 그냥 제가 처먹을 수 있을만큼만 처먹어야 되는데


▲ 일단 여기도 뜰은 넓다


▲ 뜰이 넓으니 수로도 엄청나다.



  새로 산 신발이 발가락은 변한데 바닥이 너무 얇은것 같아 발바닥이 아프다. 신태인읍내에서 신발을 살까 했더니 이곳은 신발가게도 없다. 거기에다 라디오를 듣기위해 가지고 다니던 엠피쓰리가 고장나서 고치려해도 그런 가게도 없는것 같다. 이곳은 쇠퇴해 가는 지역처럼 보인다. 천상 내일 김제에 가서 신발도 사고, 엠피쓰리도 고쳐야겠다.

대신에 여관비는 저렴하다. 삼만원이다. 아쉬운대로 라디오 한개 샀는데 중고같아서 이야기 하니 주인영감이 오래되서 그런단다. 다른건 없냐니까 없단다. 그게 만원이다. 덴장맞을!

 



오늘 이동한 거리 23.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