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묘
종묘가 세기의 건축물이고 서양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는데 잘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 종묘를 가 본적은 없다. 그저 종묘공원에 집회때문에 한두번 가본적이 있을 뿐이다. 종묘는 엄숙함이 있고, 고즈넉함이 있고, 뭐 그렇다지만... 책에서 격찬이 이어지다 보니 나도 사진을 보며 그런가? 하게 된다. 사실 사진에서 보면 낮은 지대에서 높은 월대를 보고 또 그 위에 단을 놓고 건물을 놓았으나 지붕은 또 낮은, 뭐 그래서 또 특이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쨋거나 늦은 가을에는 오후에, 그리고 눈내리는 겨울에는 오전에 들러 보는것이 좋다는 이야기 이고, 또 종묘제례는 꼭 봐야 한다고 한다. 봄에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그리고 가을에는 매년 11월 첫째 토요일에 열린다고 한다. 실제는 11시부터 인데 그걸 다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14시에 종묘에서 지내는 제례만이라도 봐야 할것 같다. 종묘제례때 하는 일무, 즉 보태평과 정대업은 볼만할 것 같다. 가로세로 8줄로 84명이 추는 춤으로 보태평은 문무로서 적과 피리를 들고 추며, 정대업은 칼과 창을 들고 춘다.
2. 창덕궁
조선을 개국할때 지었던 경복궁은 위엄을 중시하기 때문에 평지에 위엄적으로 지어졌단다. 경복궁을 보면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이 일자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창덕궁은 조선의 형식으로 지형을 이용하여 건축하여 보다 친근하게 지어졌다고 한다. 사실 경복궁 보다 창덕궁에 기거한 왕들이 더 많다고 한다. 창덕궁은 태종이 지었고, 그 이후 많은 왕들이 창덕궁을 정궁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덕궁 돈화문을 거쳐 오른쪽으로 90도를 꺽으면서 금천교를 건너고 진선문을 지나 다시 왼쪽으로 90도를 꺾으면 인정문이다. 인정전에서 다시 인정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숙장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선정전이 있다. 선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치를 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임금의 응접실겸 독서실 역할을 하는 희정당이 있는데 창덕궁에서 가장 화려하게 건축된 건물이다. 희정당 뒤쪽이 대조전인데 큰 인물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이곳이 왕비 중전이 머무는 곳이며 대궐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다. 대조전 뒤에 경훈각은 왕가의 휴식공간이라고 한다. 대조전 뒤쪽으로 화계가 있는데 이곳도 볼만하다고.
다시 나오며 희정당 옆쪽으로 세자가 머물던 동궁지역이다. 동궁지역으 많은 부분이 후원으로 가는 길 때문에 헐렸다. 지금은 세자의 독서실 같은 성정각과 삼삼와, 승화루만 남아있다. 승화루 아랫쪽에 낙선재가 있는데 문예를 좋아했던 헌종임금이 양반가의 주택을 모방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단청이 없고 수수하지만 아름답게 건축되었다고 한다. 낙선재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 가족이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순종의 계후인 순정황후와 영친왕 그리고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3.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은 자연을 제대로 이용하였다. 우거진 숲은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가정당 가는 길을 지나 언덕을 지나고 나면 부용지가 나타나는데 아름답기가.... 서양사람들은 오마이 갓, 언빌리버블, 언크레더블.... 원더풀!! 한다고 한다. 가운데 부용지가 있고, 부용지에 두발을 담근 부용정, 뒤편 높직히 규장각, 그 아래 사정비각, 오른쪽 영화당이 있다. 영화당은 단을 높이 하여 지은 건물인데 영화당 마루에 앉으면 창경궁의 춘당지가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담이 쳐저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창덕궁과 창경궁이 나뉘어 지기 전) 춘당지 옆 춘당대에서 말쏘기, 활쏘기 경연이 벌어지고, 왕은 영화당에 앉아서 감상을 했다고 한다. 동궐도에 보이는 부용지는 더욱 아름다웠다. 이곳도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예전에 딸래미와 함께 다녀오긴 했는데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더라.
규장각 건물은 2층인데, 아래층은 '각', 윗층은 '루' 라고 한다. 그래서 1층은 규장각 이고, 2층은 주합루 라고 했다. 규장각은 임금의 글을 보관하는 서고이며, 주합루는 우주와 합일한다는 뜻이다. 규장각을 둘러싼 담장은 자연담장으로 '취병' 이라고 했다고 한다. 요즘 말하면 쥐똥나무 울타리 같은것인데, 이곳은 신우대로 엮어 만들고 그 사이에 키작은 나무나 덩굴식물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정조임금은 문학을 좋아했던 철인 군주라고 한다. 이 규장각을 세운이도 정조임금이고, 규장각 검서관들에 서얼 출신의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을 등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실사구시를 중요시 했던 철인 정치인 정조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주합루 뒤로 왼쪽에 희우정, 오른쪽에 천석정이 있고, 서향각이 있다고 한다. 희우정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비가 내렸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 천석정은 대풍을 기원하는 뜻에서, 그리고 서향각은 예전에는 책을 말리는 곳으로 책의 향기가 나는 곳이라고 했으나, 1909년 순정황후가 친서한 '친잠권민'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일제가 이곳을 양잠소로 만들어 버려 한동안 양잠소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의 관람 코스는 낙선재 옆 출입구에서 시작하여 부용정-애련정-존덕정-옥류천-연경당을 두루 관람하고 규장각 위쪽 산길로 해서 출구로 돌아나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즐거운 산책길이라고 유홍준 저자의 책에 써 있다. 이쪽은 부용정 까지만 가본 기억이 있다. 다음에 꼭 돌아 봐야 겠다.
궁궐 건축물의 이름 끝에 붙는 명칭의 구분.
전-선정전, 대조전처럼 왕과 왕비의 건물에만 사용됨
정-희정당, 영화당 등 왕이 정무를 보는 집과 왕세자의 정전인 중희당 같은 건물에 사용
각-신하들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왕세자가 서연을 여는 성정각, 내각의 학사들이 근무하는 규장각이 그 예
합-규장각 보다 중요도가 낮은 경우(홍순민 교수는 오히려 합이 중요하다고 했음)
재-낙선재처럼 서재 내지 사랑채의 성격을 지닌 집
헌-마루가 넓은 건물
루-주합루처럼 2층 건물이라는 뜻
정-정자인데, 사다리나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이면 평원루처럼 루 라고 불렀다고 함. - 책의 내용에서
의두합은 영화당 건물을 지나치면 금마문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수수한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의두합이다.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독서를 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효명세자는 그동안 잘 몰랐다. 솔직히 조선시대의 세자로는 '사도세자' '소현세자' 정도만 들어봤다. 그런데 순조의 아들이며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는 성군이 될 자질을 충분히 타고났던 분이란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학문을 좋아했던 효명세자는 안타깝게도 22세에 잦은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아까운 인재는 이렇게 가는 모양이다. 헌종 역시 갑자기 젊은 나이에 죽게되어 그 뒤에 세도정치가들에 휘둘려 헌종의 아저씨뻘이 되는 강화도령 철종이 뒤를 잇고, 다시 영조의 현손이며 정조의 배다른 동색인 은신군의 증손자인 고종으로 이어지며 조선의 쇠락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존덕정 영역으로 들어서면 철인군주로 일컬어 지는 정조의 공간이라고 한다. 존덕정에는 정조의 청치신념이 적힌 액자가 있고, 이곳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오셔서 문화재청장 당시의 저자와 혁신에 대하여 논의한바 있다고 한다. 두분 모두 아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류천 영역에는 소요정, 태극정 등 정자가 있다.
위와 같이 창덕궁 후원은 부용정 영역, 존덕정 영역, 옥류천 영역으로 구분해서 탐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단은 다음지도에서 로드뷰를 돌려보며 탐방했다. 세상 참 좋다. 실제 가보는 것 보다는 못하지만 가상현실에서 탐방한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에 꼭 탐방을 해야겠다.
4. 창경궁
창경궁은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을 위해 창덕궁 곁에 수강궁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성종이 세 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어 수강궁을 중건하고 창경궁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창경궁은 이렇게 현직에서 물러난 상왕을 모시거나 대비 등을 모시게 되면서 남성보다는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창경궁에서 태어난 임금과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도 창경궁이다. 사도세자, 정조, 순조,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성종의 세분 대비는 물론, 중종, 사도세자, 소현세자, 혜경궁홍씨 등이 이곳에서 죽었다.
창경궁은 일제가 궁의 위상을 낮추기 위해 많은 전각들을 헐고 1909년 11월 1일 동식물원을 개원하였다. 그러다가 1977년 창경원의 과천 이전 계획이 수립되고 1983년 12월 31자로 공개 관람이 폐지된후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과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명정전에서 명정문 사이 좌우 회랑과 문정전을 옛 모습대로 회복하여 1986년 8월 23일 일반에 공개했다.
이렇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1편을 다 읽었다. 막상 읽으면서 보니 종묘, 창덕궁, 창경궁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봄에 갈까? 가을에 갈까? 어차피 하루에 다 볼 수는 없겠다. 퇴직하면 궁궐답사, 사찰답사, 뭐 등등 많이 해 보고 싶다. 그러려면 다리에 힘이 있을때 다녀야 겠지?
[사진] 2018년 12월 13일 종묘, 창덕궁, 창경궁을 다녀왔다.
<종묘>
▲ 향대청
▲ 향대청(오른쪽 방에 제사음식 모형이 차려져 있다. )
▲ 향대청(임금과 세자가 제례 준비를 하던 곳)
▲ 전사청(제례 음식을 만들던 곳)
▲ 정전 남신문(조상신들이 들어가는 문)
▲ 정전
▲ 배향공신당
▲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 영녕전(월대가 정전에 비해 상당히 낮게 됨)
<창덕궁>
▲ 종묘에서 창덕궁 가는 길
▲ 돈화문
▲ 금천교
▲ 희정당
▲ 희정당 주방
▲ 대조전에는 용마루가 없다
▲ 부용지와 부용정
▲ 영화당에서 창경궁쪽을 보면 암것도 안보인다.
▲ 규장각의 취병
▲ 규장각
▲ 영화당
▲ 애련지
▲ 애련정
▲ 의두합(소명세자의 공부방)
▲ 폭설에 노송은 부러지고
▲ 맨뒤는 존덕정, 앞쪽은 관람정
▲ 존덕정 일원
▲ 관람정
▲ 존덕정
▲ 펌우사
▲ 승재정
▲ 연경당의 농수정
▲ 연경당의 선향재
▲ 연경당 바깥채
▲ 연경당 안채
▲ 연경당 안채의 툇마루(이쪽에서만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 연경당 안채에서 바깥채까지 이어진 방
▲ 낙선재
▲ 낙선재 화계
▲ 석복헌
▲ 낙선재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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