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논법을 구성해보자. 하나. 배아줄기세포는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한다. 둘.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든다. 셋. 따라서 황우석 교수는 불치병과 난치병을 낫게 할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는 맞지만 첫 번째 명제가 잘 못 되었다. ‘배아줄기세포는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해줄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로 정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도 달라야 한다. 희망해야지 확신하면 안 된다.
배아줄기세포에 환호하는 것은 배아줄기세포로 인체에 존재하는 200여 가지 세포조직을 분화시킬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척수가 끊어져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외부에서 환자의 몸에 맞는 척수신경을 만들어 넣어주면 척수가 이어져 다시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배아줄기세포는 준다. 그런데 배아줄기세포는 전혀 안정적이지 못하다. 한 가지가 아니라 200여 가지 세포조직으로 분화할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기 때문이다. 럭비공처럼 어느 세포조직으로 튈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닌 것도 문제다.
황우석 교수는 체세포 핵이식 방식으로 배아를 복제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신선한 난자를 사용해야 하고 복제된 배아의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 황우석 교수는 그동안 치료와 무관한 연구를 위해 난자를 사용했다. 치료는 아직 먼 이야기다. 연구에 사용하는 난자는 반드시 규정에 의거 기증되어야 한다. 기증자는 자신의 난자가 연구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명백히 알아야 하고, 난자를 받는 이는 절차에 따라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의사 앞의 수술 전 환자처럼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난자는 정자와 달리 쾌감을 동반하며 쉽게 빠져나가는 세포가 아니기에 연구자가 아니라 기증 후에도 건강해야 할 여성의 처지에서 세심하게 시술해야 한다. 난자 적출 과정은 꽤 복잡하고 위험한 까닭이다.
배아줄기세포는 황우석 교수가 실시한 체세포 핵이식 방법만이 아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의 박세필 박사는 세칭 ‘시험관아기’를 시술하는 불임클리닉에 냉동 보관된 배아를 사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든다. 시험관아기를 원하는 여성의 몸에서 추출하는 난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한두 개가 아니다. 사회의 윤리의식이 높은 국가와 달리, 과하게 배란이 유도된 난소에서 수정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한 난자는 모두 빼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경우 10개에서 30개 정도가 나오고, 심지어 60개도 빼낸다. 빼낸 난자를 모두 수정시키면, 자궁 착상 후 상당수의 수정란이 남는다. 남은 수정란은 동생 출산을 대비해 보통 5년 정도 얼려두는데, 후속 출산을 윈치 않는 부부의 수정란은 5년 지난 후 처리한다. 착상하면 태어날 생명이 결국 희생되는 것인데, 기왕 죽일 수정란이라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활용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박세필 박사는 자신이 만든 배아줄기세포를 쥐의 심장세포조직과 함께 배양해 박동을 하는 사람의 심장세포조직으로 분화시켰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토론회에 나온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보여주었다. 동영상은 편집되었다. 심장조직으로 분화시키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세포조직으로 분화된 럭비공 사례는 지적하지 않았다. 심장조직으로 바뀐 배아줄기세포가 계속 심장세포조직으로 유지되는지, 주변 조건이 바뀌면서 엉뚱한 세포조직으로 변화했는지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동영상을 본 대부분의 청중은 놀라워했고, 심장은 물론 척수신경으로 분화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황우석 교수나 박세필 박사의 배아줄기세포는 불안정하기가 마찬가지다. 환자의 치료에 사용하려면 안정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예고하는 희망사항이 가시권에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논의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배아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정 후 8주 이전까지를 배아라고 하는데,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배아는 보통 수정 후 14일 이전에 희생시킨다. 그때에는 단순히 덩어리진 세포 상태이므로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규정을 임의로 내세운다. 그런데 그 규정은 실용주의자의 몫이 아니다. 여성을 포함하는 인문사회 전공자, 생명윤리학자, 종교계, 법학자들이 구속력 있게 포함돼, 면밀히 논의해서 배아 생명의 지위를 고민해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 사회의 생명윤리의식이 고취되고 관련 윤리지침이 사회적 합의로 정비된다.
까다로운 윤리규정과 엄격한 감시기구를 둔 국가들은 여성의 몸에서 연구용이든 착상용이든 신선난자를 쉽게 빼낼 수 없다. 그러니 어렵게 구한 난자를 조심스레 다뤄야한다. 수십 년 연구해온 과학자도 그래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데, 배아 생명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못한 우리나라에서 황우석 교수는 2004년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했고, 눈이 휘둥그레진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개선장군처럼 귀국하면서 윤리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기 전까지 연구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가 치고 올라온다는 이유를 들면서 2005년 다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황우석 교수나 박세필 박사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기보다 배아줄기세포주(株)를 확립했다고 주장한다. 배아줄기세포주는 계속 분열하면서도 성격이 바뀌지 않는 상태의 세포 덩어리를 말한다. 덩어리를 잘라도 같은 성격으로 늘어난다. 2004년 황우석 교수가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는 난자를 제공한 바로 그 여성의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밀어넣었다. 2005년 배아줄기세포주는 다른 이의 체세포 핵을 난자에 치환해 확립했다. 그중에 환자 체세포도 있었다 한다. 하지만 그 배아줄기세포는 정작 치료를 원하는 환자와 유전자가 다르다. 황우석 교수보다 먼저 확립한 박세필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주 역시 환자의 유전자와 다르다. 장기를 함부로 이식할 수 없듯, 아무 배아줄기세포를 치료에 사용할 수 없다.
치료를 원하는 환자의 체세포 핵을 매매 또는 기증된 신선난자에 넣어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면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다. 황우석 교수의 방법이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 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난자 세포질 속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도 유전자를 갖는데, 그 유전자는 환자와 같지 않아 부작용이 생긴다. 그 문제 극복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환자 체세포 핵은 이미 병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핵을 치환하기 전에 환자의 유전자를 미리 조작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조작된 유전자가 배아줄기세포로 환자의 몸에 들어갔다가 호흡이나 배설물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누구도 모른다.
만일 은행을 두어 박세필 박사의 방식으로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환자에게 부작용 없는 세포조직을 구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불일치에서 오는 부작용은 남는다. 충분한 배아줄기세포주를 확보하기 위해 불임클리닉에 착상 후 남은 냉동 수정란을 소진하거나 시험관아기를 원하는 부인의 몸에서 난자를 과다하게 추출하려 한다면 새로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배아줄기세포의 안전성은 불임클리닉의 냉동된 수정란이나 기증 또는 매매된 신선난자의 양으로 확보할 수 없다. 이미 확립된 배아줄기세포주를 대상으로 연구해야 한다. 세계줄기세포허브에서 연구 희망자에게 확립된 배아줄기세포주의 일부를 잘라 보내 안정성을 확보해야 치료에 대한 희망을 타진할 수 있다. 안정성 확보 연구는 황우석 교수가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와 더불어 박세필 박사가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 역시 유용하다. 그렇다면 확립된 배아줄시세포가 설사 모자랄지라도 굳이 난자를 다시 추출해 배아를 만든 후 죽일 이유가 없다. 불임클리닉에 꽤 냉동보관 돼 있는 착상 후 남은 수정란을 활용하는 편이 생명윤리 측면에서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이 현실과 가까울수록 예상되는 부가가치의 액수는 올라갈 터, 관련 특허에 욕심이 발동한다면 확립한 배아줄기세포주를 우리가 먼저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난자 기증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출범한 민간난자기증재단은 시기상조다. 배아줄기세포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들에게 치료 가능성을 성급하게 예단하는 태도는 단순한 결례를 넘어선다. 실용화가 더딜수록 환자와 그 가족이 느끼는 절박함과 초조함은 가중될 것이고,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들로 발생하는 불치병과 난치병의 원인을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이 소홀해질 것이며, 편의시설을 갖춘 사회에서 장애인도 정상인과 같은 대우를 받고 살아갈 기회가 차단될까 두렵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현재 안전환경에서 특히 그렇다.
가톨릭은 100억이라는 거액을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수정과 착상 이후 8주 경과한 태아에서부터 사망할 때까지, 누구나 성체줄기세포를 지니고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세포조직만 계속 재생하는 성체줄기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도 여전히 같은 세포조직을 만들 테지만, 실험실에서 조절하면 필요한 세포조직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세계각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렇게 분화된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래서 환자 치료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빠른 실용화를 예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오죽하면 자금력이 높지 않은 가톨릭이 나섰을 것인가.
성체줄기세포는 분화되는 세포조직의 양이 적다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은 폄하하지만, 척수를 잇는데 많은 세포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줄기세포든, 불치병과 난치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척수환자나 당뇨병처럼, 필요한 줄기세포의 양이 작고 세포조직의 종류가 단순하다면 몰라도, 치료해야 할 세포의 양이 많거나 세포층이 복잡한 장기의 치료는 매우 어렵다. 노환은 질병이라기보다 과정이다. 노환은 완화 노력이 중요하지 치료하겠다는 자세는 오만이다. 성체줄기세포는 분화되는 세포조직의 종류가 한정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므로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수많은 성공사례는 특허로 계속 축적되지 않은가. 국가의 부가가치도 그만큼 먼저 챙긴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를 죽일 필요가 없다. 환자의 몸에 큰 무리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생명윤리 문제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무엇보다 임상치료가 가시화된 마당이므로 배아줄기세포보다 훨씬 유용하다.
환자의 성체줄기세포는 분화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다른 이의 성체줄기세포는 부작용을 걱정해야 한다. 성체줄기세포는 어릴수록 활성이 높다. 최근 신생아 탯줄이나 태반에 있는 제대혈을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제대혈은 면역학적 관용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충분한 제대혈 성체줄기세포를 은행에 확보한다면 불치병과 난치병 치료의 길을 가장 빨리 열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우리나라의 관련 연구자들은 연구비에 목말라한다.
줄기세포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배아줄기세포가 그렇고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아줄기세포는 특히 그렇다. 생체를 다루는 만큼, 성체줄기세포일지라도 생명윤리 측면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하거늘, 멀쩡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규정해 만드는 배아줄기세포의 신화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지울 수 없는 윤리적 멍에다. 윤리적 멍에를 이고라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 용인해야 할까. 그렇다면, 배아줄기세포의 안정성 확보와 예상되는 숱한 부작용은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안정성과 안전 연구를 위해 난자를 계속 추출할 필요는 없다. 남아도는 불임클리닉의 냉동 수정란보다 확보된 배아줄기세포주를 활용해야한다.
거룩하고 숭고한 목적을 실용주의자가 임의로 각색하면 안 된다. 부가가치로 환원되면 위험할 수 있다. 거룩하다는 가치에 쉽게 매몰되다보면 신화는 등장한다. 진실은 은폐되고 본질은 호도된다. 배아줄기세포에 관련한 신화는 여성들에게 난자를 기증해야 숭고하다고 세뇌한다. 비판하는 자는 매도된다. 민족주의 감정까지 끼어들면 더욱 복잡해진다.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싸고 휩싸인 우리 사회의 집단 광기에 가까운 민족주의가 그렇다.
비판 없는 성역은 없다. 공자와 맹자도 예외일 수 없다.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 민족주의는 어떤 광기를 유발할까.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는 히틀러의 예를 주목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자성론이 인다. 자성론의 확산을 기대하며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신화를 벗긴다. (시민의신문, 200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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