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2025
2024. 12. 3. 윤석열이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비상계엄. 곧바로 포고령 1호가 선포되고, 국회. 지방의회. 정당등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야당에서 계속 비상계엄 선포를 우려하면서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계속했다. 그때 정부와 여당에서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곧바로 해제해야 하는데 계엄이 되겠냐고 반문했다. 야당에서는 '너희들이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감금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라며 계략을 멈추라고 했다.
다행히도 당일 곧바로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갔고, 경찰이 정문을 막고 통제했지만 야당 대표를 주축으로 한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헬기를 타고 들어온 특전사 군인들이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민들과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직원들이 막았다. 이 틈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결의하여 통과시켰다.
근데 비상계엄 약 50여 일 전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에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40년도 전에 발생한 비상계엄이 오늘 또 발생된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번 윤석열이가 저지를 비상계엄이 만약, 당시에 시민들이 국회에 모이지 않았다면, 국회의원들이 즉시 국회로 모이지 않았다면, 출동한 특전사 군인들이 80년의 그 무지한 군인들과 같았다면, 4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 다시 반복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 독후감을 쓰는 지금도 윤석열 내란 세력들은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증이 더했다.
소설은 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어린 새 - 동호를 관찰하는 관찰자 시점
소설 제목의 소년, 동호가 5.18 민주화운동의 가운데 있게 되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중학교 3학년. 그의 집에 세 들어사는 같은 반 친구 정대와 정대의 누이 정미를 찾기 위해 둘이 광주 시내를 헤매다가 그런데 함께 손을 잡고 뛰어다니다가 정대의 손을 놓쳤고 그때 정대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았다. 동호는 순간 달아났다. 동호는 사실 정대가 정말 총에 맞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이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지만 정대 손을 놓친 것과 달아난 것에 대한 채무감 때문에 친구 정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당시 시신을 두었던 도청 민원실을 찾았다가, 거기에서 봉사하는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형을 만난다. 상무관에 놓아 수많은 희생자들을 보면서 과연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지? 있다면 그 영혼은 작은 새로 변하여 주변에 날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호는 희생자들 관에 태극기를 덮어 놓는 것을 보고 왜 저들은 국가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도 태극기를 덮어 놓느냐고 은숙 누나에게 묻는다. 그러자 은숙 누나는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번에도 계엄군은 국회의원들을 모두 잡아다가 수방사 벙커에 가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30여명 체포하여 고문을 시켜, 가짜 증언을 하게 하려고 했고,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14명을 체포하려고 했었다. 바로 앞의 은숙 누나 말처럼 이번엔 대통령이 반란을 일으키고 항구적인 권력을 유지하려고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다행히도 그 군인들이, 똥별들을 제외한 중간 지휘자와 일반 병사들이 그 명령을 소극적으로 이행하고, 일부는 거부했다.
제2 장 검은 숨 - 죽어서 혼이 된 정대의 시점
정대는 동호와 함께 누이를 찾으러 다니다가 분수대 부근에서 시위하는 군중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다가 총에 맞는다. 그 이후 자신의 시체를 계엄군이 처리하는 모습을 본다. 시민들의 시체를 트럭에 짐짝처럼 싣고 와서 어느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에 땅을 파고 켜켜이 쌓는 끔찍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겨우 중학교 3년생인 정대의 시신을 아무 죄책감 없이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 위에 다른 시체를 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처음에는 자신의 시신에 묶여있던 영혼이 시신이 불타면서 마침내 자유를 찾는다.
영혼이 된 정대는 생각한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그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리고 마침내 자유를 찾은 영혼은 생각한다.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자'
제3 장 일곱 개의 뺨 - 은숙을 관찰하는 시점
그 이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공포스러운 세상이다. 살인마 전두환이가 집권하고 있는 세상은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은숙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불온서적'을 출판한다는 이유로 번역자의 위치를 밝히라며, 그녀의 뺨을 일곱 대나 때린다. ㅠㅠ 이 얼마나 불합리한 세상인가?
그녀는 도청에서 학살이 있던 날 이후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그날 진수가 심야 방송을 할 여성들 3 명 외의 여성들은 모두 도청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고 나왔다. 그녀는 다른 여대생 언니와 함께 전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여대생 언니의
친척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밤을 새운다. 새벽에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방송을 듣고, 그 이후 도청에서 계엄군의 불 뿜는 총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나올 때 동호가 있는 것을 보고 함께 나가자고 했으나 동호는 안으로 도망가서 함께 나오지 못한 자책감과 그날 다른 사람들이 도청 안에서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는 자책감에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 딱 감고 살아주면 안되겄냐.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 그냥 다 잊어불고 남들같이 대학 가서 네 밥벌이 네가 하고, 좋은 사람 만나 살고.... 그렇게 내 짐을 덜어주면 안되겄냐" 하는 하소연을 듣고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거듭하다가 결국 학교를 포기하고 출판사에 입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학비가 아니더라도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만 살아있다는 죄책감에, 채무감에 당시에 전두환 살인마에 대항하는 집회나 투신 자살에 나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4장 쇠와 피 - 진수 관찰 시점
진수와 함께 헌병대 감옥에 갇혀서 갖은 고문을 당했던 사람을 통해 진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도청을 사수하는 날 12명 정도가 같은 조로 편성되었다. 조장은 진수를 회상하는 사람으로 당시 23 살이었다. 그가 조장이었으니 조원들은 그보다 더 어린, 진수가 대학교 1년생이고, 그 외 22세 이하 17세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당일 함께 도청을 사수하겠다고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끼여 있었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럿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이하 생략)
그러나 당시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은 양심도 없었고, 선함도 없었다. 그날 진수는 동호가 나가지 않은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미 시간은 지났으므로, 동호에게 나중에 우리가 모두 죽으면 손들고 항복하라고 했다. 손들고 항복하는 어린 학생들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계엄군이 들어왔을 때 대부분 어린 사람들은 총을 들고도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잡혔다. 그때 동호와 고등학생들 몇 명이 손을 들고 한 줄로 내려올 때 계엄군 하사는 그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쏴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진수의 충격은 상상도 못 하겠다. 결국 동호를 죽인 것은 자신의 가르침 때문인 것이다. 그가 동호에게 손들고 항복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랐는데...
도청에 남아 어린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해서 순수한 양심으로 임했던 시민들은 피를 흘렸고, 일말의 양심도 없는 계엄군의 총알(쇠)는 그 양심을 쏴 버렸다.
살아남은 시민군들도 헌병대에 끌려가서 감옥에 갇혀 갖은 수모와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특히 예쁘장하게 생겼던 진수는 성적인 고문까지 받아야 했다. 그들 중 더 어렸던 당시 16 세였던 영재는 정신 이상자로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불면증, 악몽, 두통에 시달려 진통제와 수면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영재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고 그해 겨울에 진수는 자살을 했다. 계엄군들은 시민군들에게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 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라는 생각으로 굶기고 고문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말 나쁜 놈들. 그럼에도 전두환이는 천수를 다하고 뒈졌다. 그런 것을 보고 윤석열이 다시 계엄을 선포했던 것이 아닐까.
제5장 밤의 눈동자 - 선주의 관찰시점
임선주는 서울에서 공장을 다녔다. 그때 성희언니는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녀는 학교 선생님 같은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신문이라도 제대로 읽으려면 1800자 정도의 한자는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한자를 열심히 배웠고 한자 쓰기가 끝나면 성희언니의 노동법 강의를 들었다. 스므살 전까지 그녀는 열심히 일했다. 살 때. 그때는 15시간 노동, 월 2회 휴무, 남자의 절반 수준만큼 되는 월급, 그녀들은 타이밍을 먹으며 일을 했고,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어용노조를 큰표차로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강제로 끌고 가던 날, 그들은 모여 투쟁했다. 투쟁이라고 해봐야 노조 간부를 잡아가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은 그녀들을 걷어차고 두들겨 패서 끌고 갔다. 18살이던 선주는 그날 옆구리를 걷어 차여 장이 파열됐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서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와서 다시 취업을 했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곧바로 잘렸다. 그래서 광주로 와서 신분을 속이고 미싱사 보조로 들어갔다. 열심히 배워서 미싱사가 되었는데, 5월에 주인아저씨가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담양으로 피신을 가는 바람에 할 일이 없게 되어 전남도청 광장으로 갔다가 상무관에서 시신 처리 업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날 밤, 선주는 가두방송을 하라는 부탁을 받고 다른 여성과 함께 트럭에 탔다. 그래도 나이가 더 많고 적극적이기에 칼빈총을 어깨에 매고... 그녀는 총을 쏠 줄도 몰랐다. 밤새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했다. '시민 여러분, 저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지금 불을 켜고 도청 앞 광장으로 나와 주세요' 하면서. 그러나 시내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아마도 그 방송을 듣는 시민들도 마음속으로는 불을 켜고 당장 달려 나가고 싶었겠지만 나가기만 하면 계엄군이 가리지 않고 총을 쏴대는 것을 이미 보았기에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선주는 10년 전에 윤 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당시 생존자로서 증언을 부탁 받았으나 거절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증언을 부탁 받았다. 그러나 선주는 증언을 할지 말지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 상황은 너무너무 힘들고 끔찍하기 때문이겠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상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2 년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생략)
선주가 5.18후 감옥에서 석방된 이듬해 성희 언니를 만났는데,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해고되기 전에 정미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까지는 정미의 얼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정미는 16살에 처음 들어왔었다. 그녀는 동생 학비를 대고 자기도 나중에 대학을 가서 의사가 되고 싶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을 못하겠다고 했었다. 그랬지만 그녀들이 구사대와 경찰들에게 개 끌려가듯이 잡혀갈 때 어질러져 있던 조합원들의 신발을 주섬주섬 주워서 노조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하염없이 울었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이제 정미의 얼굴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선주는 시외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금남로에서 전시된 5.18 사진을 보고 그중 한 장을 뜯어서 5층 음악감상실로 가서 본다. 그 사진은 정미가 광장에서 총을 맞고 죽어있는 사진이다. 그때서야 동호가 찾던 정대의 누나, 정미로 생각이 이어졌다. 선주가 피의 고문을 당할 때 정미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선주는 동호에게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그러면서 성희 언니에게 '죽지 마' 라고 한다.
과연 선주는 증언을 할까?
제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의 시점
30년이 지난 시점에 생때같은 자식을 먼저 보낸 광주의 어머니는 자꾸 중학생이던 동호가 눈에 보인다. 그래서 부지런히 따라가지만 늙은 어머니는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어머니는 자식을 두 번이나 데리러 갔다가 억지로 끌고 오지 못한 자책을 한다. 둘째 형 역시 자책을 한다. 당시 서울에 있던 큰 형은 작은 형한테 그 조그만 녀석을 왜 끌고 오지 못했느냐고 질책을 한다. 둘째는 꺽꺽대며 '잘 알지도 못하고, 당시 광주가 어땠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말을 하느냐'라고 하면서 큰형과 싸운다. 그리고 이놈들 원수를 내가 꼭 갚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국가 권력을 도둑질 한 놈들을 무슨 수로 갚나? 그렇게 광주의, 아니 쿠데타 세력에게 핍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한을 가슴에 담아 둔다. 그러나 광주의 어머니들은 그저 슬픔만을 안고 살아가지는 않았다. 어머니들은 흰 상복을 입고 매년 집회를 하고, 전두환이 광주에 왔을 때 몰려가서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에필로그
한강 작가는 8 살 정도까지 광주에 살다가, 그러니까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동호네 집에 살았다가 2년 정도 더 광주 변두리에 살다가 당시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한승원 님을 따라 서울 수유리로 이사를 했다. 그녀 10 살 때 5.18이 일어났고, 그 때 예전에 그녀가 살았던 집에 실제로 중학생 아들과 그의 친구가 함께 참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작가는 그때부터 광주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자료를 찾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중략)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이런 상황은 40년 후인 2024.10.2 발생된 비상계엄에서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훨씬 많았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 발포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가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 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집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생략)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는데 정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2.3 내란을 보고 정답임을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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