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전용차로 라트비아 리가로 이동, 이동중에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에 들렀다.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은 제정러시아 지배 시대, 종교와 정치의 탄압으로부터 항거하는 리투아니 사람들의 종교적인 항쟁이자 평화적 시위였다고.
구소련 공산 치하에서는 더욱 강한 탄압을 가해 세번이나 십자가 언덕을 탱크로 밀어 버렸지만 밤이 되면 감시를 피해 하나 둘식 십자가를 가져다 놓는 일이 계속되었고, 결국 공산당도 어쩌지 못하고 독립이 되면서 지금은 하나의 순례지가 되었다고 한다. 1993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다녀가셨고, 그를 기념해서 비석을 세워 놓았고 커다란 십자가도 세워 놓았다. 지금의 프란체스코 교황이라면 좀 작은 십자가를 세우지 않았을까? 십자가 언덕 주차장에는 여러 종류의 십자가를 판매하고 있어 언덕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십자가를 사서 언덕에 가져다 놓기 때문에 그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 전체 면적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해도 힘들어 하고 나도 새끼발가락이 아파서 그냥 초입만 보고 차로 돌아왔다.
거기에서 두시간이 채 못되어 리가에 도착했다. 리가로 들어설때 커다란 강변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내는 네모난 돌로 포장이 되어 터덜터덜... 이곳도 아파트형 숙소인데 배정받아보니 좋지 않다. 다섯명이 사용해야 하는데 욕실이 하나다. 거기에 침대는 부서져서 삐딱하다. 다행히 인솔자가 숙소를 추가 배정하여 우리는 바로 앞에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밥을 못해먹고 세탁을 못하는 거 외에는 좋다. 배정후 시내투어, 인솔자가 빠른 걸음으로 위치를 집어가며 안내를 해주고, 다음날에 시굴다와 체시스를 갈지, 아니면 리가에서 자유시간을 가질지 토론이 벌어져서 우리는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자유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모두 리가에서 자유시간을 보냈다. 리가 시내는 온통 '하지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여자들은 화환으로 머리를 두르고, 남자들은 무슨 떡갈나무 잎 같은걸로 머리를 두르고 있다. 여기는 하지날에 하지축제를 한다고 한다. 낮이 가장 긴 날인데, 가뜩이나 백야가 지속되는 지역이라 언제 해가 넘어갈지 궁금하다.
시내 안내를 받을때 새끼 발가락 때문에 절뚝거리며 걷는 내 모습을 보고는 신발을 사러 가자는 안해의 등살에 결국 나가서 샌달을 사왔다. 샌달로 바꿔신으니 한결 편하고 이제는 도시가 보이는 것 같다. 일단 나가서 마트를 들러 먹거리를 사고, 저녁을 먹으려다 맥주만 한잔 마시고 들어왔다.
▲ 숙소 골목
▲ 소녀상?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있었는데?
▲ 리가 최초의 우물터
6월24일, 오늘은 하루종일 자유시간이다. 아침 9시에 밖에 나가서 지도한장 들고, 구글지도로 위치를 봐가며 어제 갔던 곳을 더음어 돌아본다. 샌들을 신으니 훨씬 편하다. 이제 방향감각도 좀 살아나고, 카메라도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먼저 성피터성당을 들렀다. 숙소 바로 옆에 있기에 편하다. 성피터성당은 발틱에서 가장 높고 크다고 한다. 하지만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월요일인데 문을 닫았기에 내부는 물론, 종탑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겉에서만 보았다. 성당 뒤편에 브레멘 음악대에 나오는 동물들의 동상이 있는데 브레멘시로 부터 기증 받은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점프를 해서 동물들을 만지는데 맨아래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인데, 난 세번째 고양이 까지 닿았다. 키큰 서양사람들은 닭까지 쉽게 닿는다.
상업이 번창했을 당시 한자동맹 길드본부인 검은머리전당은 길드 수호신인 무어인 성모리스가 무어인의 검은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검은머리 길드의 본부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길드조직보다 아름다운 외관 덕분에 더 유명한 건물이 되었다. 이 건물은 2차 대전때 한번 파괴되고 1984년 소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라트비아 독립 후 복구하여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가돔으로 불리우는 루터파 대성당은 규모가 상당하다. 발트 3국중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재건축이 반복되며 여러 건축양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고 하며, 돔 성당의 가장 오래된 제단은 로마네스크양식, 성당 건물은 고딕양식, 18세기에 세워진 뾰족한 탑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6,718개의 파이르 오르간이 있어 1884년 당시 설치했을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었다고 한다. 그 오르간 소리를 들어보면 좋겠지만 북유럽 여행 내내 어느곳에서도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내부에 돈을 내고 들어가 보니 종탑은 못 올라간다고 한다. 아쉽지만 성당 내부와 뒤쪽에 박물관이 있어 구경했다.
약 100년의 간격을 두고 지어져 일명 삼형제건물로 불리우는 집들은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맨 오른쪽 흰색 건물은 16세기, 이게 고딕양식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음 가운데 있는 건물이 17세기, 맨 왼쪽에 있는 건물은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왼쪽으로 갈 수록 작아 지는데 아마도 대지가 부족해서 그런것 같다.
이곳에도 인간띠 잇기 기념비가 있다. 발틱의 길을 이어서 독립을 간절히 바랬고, 그 결과 독립이 이루어 졌다. 빌니우스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인간띠 잇기도 좀더 언론에 주목을 받았더라면, 그래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그 결과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모두 손을 들어 평화를 이룩했다면 좋았을텐데.
화약고, 스웨덴문, 고양이건물 등을 돌아다니자니 보이는 모든 건물과 골목들이 아름답다. 이들은 조상이 물려준 건물을 잘 보존하여 그 덕으로 현재 관광객이 몰려들어 관광 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좀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왜놈들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것은 모두 촌스러운 것, 부족한 것, 시원찮은 것으로 몰아부치고, 왕궁들은 그 위상을 갂아 내리기 위해 거의 모두 부숴버리거나 심지어는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기 까지 했고, 그 이후에 해방이 된 이후에는 확 뒤집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없어지고, 또 농촌의 건물들은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없어졌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건물은 궁궐이나 관아만 남고, 일반 평민의 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인 근대 건물은 또 일제때 건물이라는 이유로 그냥 철거되고.... 그나마 지금은 좀 달라지고 있지만 목포의 구시가 건물을 좀 활용하려는 좋은 의도를 부동산 투기로 몰아가는 현상도 있다.
▲ 중세의 공공수도
▲ 스웨덴문
▲ 화약탑
▲ 고양이 건물
고양이 건물 소유자가 길드에서 제명되어 건물 꼭대기의 고양이를 꼬리가 길드건물로 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길드를 무시하거나 욕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소송까지 갔었다고 한다.
▲ 어디가나 다리만 보이면 자물통을 달아 놓는다. 난 이런모습 정말 싫다.
누가 그러는데 노동자들이 출근시간에 늦지 않도록 여기에 시계탑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정말일까?
▲ 자유의 여신상 - 이 뒤로는 신시가지 라고.
점심 사먹고 들어와서 쉬다가 오후에 마트에 들러 다음날 점심꺼리 사고 또 쉬다가 저녁 대충 때우고 야경보러 혼자 나갔다가 들어왔다. 해가 넘어가야 되는데 10시가 되어야 넘어간다. 야경이라고 뭐 별것도 없다. 발틱국가와 북유럽은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인하여 야경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반면 밤이 엄청길어지는 겨울에는 야경도 볼만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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