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아리랑-작가의 말

by 수레의산 2013. 8. 19.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히틀러 정권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 유태인들이 주장하기로는 3백만이라고도 하고 4백만이라고도 한다. 또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자막은 6백만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럼, 우리가 일본의 식민치하 36년 동안 일제의 총칼에 학살당하고 죽어간 우리 동포들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3백만일까? 4백만일까? 아니면 6백만일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어림숫자마저도 공개되어 있지 않고, 공식화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 어림숫자를 3백만에서 4백만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작품<아리랑>을 써나가면서 그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고 있다. 그 작업은 <아리랑>을 쓰는 여러가지 목적 중의 하나이다.

  우리 동포들도 일제의 총칼 앞에서 3,4백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나는 독자 여러분들과 전체 민족성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한 학급 60명이 손바닥 다섯 대씩을 맞아야 하는 단체기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60명 중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가?」

  내가 그동안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뜸 <1번!>이라는 답이었다. 그러나 그건 틀린 답이다. 정답은 <60번!>이다. 왜냐하면 1번 학생은 제일 먼저 다섯 대를 맞고 나면 매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그 뒤의 학생들이 매를 맞는 동안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다. 그러나 60번 학생은 자기 앞의 학생들이 맞을 때마다 59번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이 답의 힌트는 흔한 우리의 속답 속에 있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유태인들은 단 3년 동안에 죽어간 것이고, 우리 동포들은 그 10배가 넘는 세월인 36년에 걸쳐서 죽어갔다. 어느 민족이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겠는가?

  유태인들보다 10배가 넘는 공포에 시달리고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찌하여 아직까지도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죽어갔는지를 어림숫자도 모르고 있는 것인가? 또 어찌하여 다른 민족인 유태인들의 비극은 마치 우리의 일인 것처럼 실감하고 분노하며 독일군들을 증오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이야기 꺼내는 것은 역겨워하고 지겨워하고, 망각하려 하고 기피하려 하는가? 그 시대가 달라서 그러는가? 과연 그 시대는 다른가? 유태인 처녀들이 발가벗겨져 독가스실에서 죽어갈 때 우리 민족의 처녀들도 동남아 일대 정글에서 정신대로(위안부로)윤간당하며 죽어가고 있었던 똑같은 시대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하여 그런 어리석은 군상들이 되었는가. 우리는 두 가지 집단최면을 당했던 것이다. 첫째는 자기네들의 수난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고자 수없이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TV드라마를 만들었던 유태인들에게 우리는 최면당했다. 둘째는 해방과 함께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을 장악했던 친일파들의 조직적인 음모로 일제시대는 망각이 최선이고, 일제시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촌스럽고 모자라는 짓으로 매도되는 최면을 당한 것이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수난을 극대화하며 자기네 민족의 자존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래를 개척하는 민족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반대로 살아온 부끄러움을 저질렀다. 그러나 역사를 바르게 아는 데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없다. 민족은 영원하므로.

 

1994년 7월

趙   廷  來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전쟁  (0) 2016.11.17
열하일기  (0) 2016.11.17
닥치고 정치  (0) 2012.03.09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0) 2012.03.08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0) 2011.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