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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기

드디어 나도 땅이 생겼다.

by 수레의산 2006. 12. 23.

2004년 1월 어느날이다.

 

그 생각만 하면 괜히 기분이 좋다. 처음엔 내게까지 기회가 올것같지 않아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초 그동안 분주하게 공사가 전개되었던 감곡문화마을의 분양공고가 났다. 분양신청 자격은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있는데, 1순위는 해당부지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 2순위는 해당부지에 토지를 100평이상 소유하고 있던 사람, 3순위는 해당마을에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사람, 그리고 4순위는 해당 면지역에 사는 사람, 마지막으로 5순위가 해당 군에 사는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4순위에 해당되었고 그나마 같은 순위에서도 경합이 되면 농가이면서 무주택이 1순위요, 농가이면서 유주택이 2순위, 그리고 비농가로서 무주택이 3순위, 농사도 짓지 않고 집도 있는사람은 4순위다. 그러니까 나는 농사도 짓지 않고 그나마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니 4순위다. 그렇게 본다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것이니 일찌감치 포기하는게 당연했다.

그런데 막상 1순위부터 3순위까지 분양신청이 끝났는데도 60%정도 밖에 분양이 되지 않았다. 4순위인 나에게도 어느정도 가능성이 엿보였다. 결혼을 하고 3년정도는 단칸방에서 살았고 그후 15년을 쭉 연립주택에서 답답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꿈에도 그리는 단독주택을 가질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전부터 언젠가는 단독주택을 짓고 마당에 철마다 열리는 과일나무를 심고 나름대로 풍류를 읊으며 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기에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우선 분양대금 납부를 위한 자금이 충분한지 아내에게 물어 보았다. 아내의 말은 아이들 저금통까지 털고 약간의 자금을 융자 받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말에 일단 꿈이 이루어 질것같은 생각이 더 들었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동료도 분양신청을 한다고 하기에 우리는 함께 대지조성공사가 거의 끝난 문화마을 단지를 방문하여 더 좋은쪽과 당첨 가능성이 높은곳을 점쳐서 도면에 표시하고 마치 담첨이나 된듯한 기분을 누렸다. 나는 분양신청 4순위 중에서도 경합이 벌어지면 그중 가장 경쟁력이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좋은 위치보다는 신청이 몰리지 않을만 한 필지를 골랐다.

마침내 분양 신청 하는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분양신청소에 도착하니 10명 정도가 분양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분양신청서는 미리 작성했지만 도착순서로 접수를 하게 되어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분양신청소에는 기반공사 직원들이 나와서 일단 분양신청이 된 필지에 대하여는 커다란 현황판에 스티커를 붙였다. 내 예감대로 위치가 좋은 필지들이 먼저 붙여지기 시작했다. 1번,2번,3번...
아뿔사!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다섯번째 신청자가 접수창구에서 나오자 마자 기반공사 직원이 스티커를 붙인곳은 내가 꼭 찍어놓은 그 땅이 아닌가? 대뜸 실망이 앞섰다. "그럼 그렇지... 내팔자에 무슨 당첨인가?" 아직도 현황판에는 많은 필지들이 남아 있었지만 경쟁력이 약한 나는 지례짐작으로 않될거라고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오후에 남들이 다 신청하고 남는 필지에 신청하기로 하고 분양신청소를 나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며칠간의 꿈이 와르르르 하는 느낌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문화마을 부지가 참으로 아까왔고 이미 당첨이 확정된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오후에 다시 가보니 부산하던 분양신청소는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거의 다 빠지고 두,세사람이 남아 있었다. 현황판에는 이제 거의 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남은필지는 산밑의 그늘진 필지와 면적이 조금 큰 필지들 뿐이었다. 그나마 그래도 괜찮은 필지가 한개 남아 있었다. 옳커니! '1154번을 찍어야 겠군' 하고 내심 마음먹고 있는데, 이게 또 웬 날벼락인가? 막 접수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과 동시에 접수창구의 직원이 밖에다 대고 "1154번 붙여요"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덜컹했다. 아! 이렇게 운이 없나?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에라, 이렇게 된것, 그냥 되나마나 경합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 앞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처음 계획하였던 필지에 경합신청을 하였다. 접수창구 직원은 "아까 신청된 필지인데, 경합 하실겁니까?" 하고 물었다. 난 힘없이 "할수 없지요. 경합이라도 해야지요" 하고 접수를 마쳤다. 접수창구를 빠져 나오면서 답답한 마음에 다시 문화마을 대지 조성공사장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현재 남아있는 필지를 유심히 보니 그때 겨울시간이 3시가 넘었는데 햇빛이 잘 들어왔다. 또 그렇게 보니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아 경합을 하느니 남아있는 필지에 분양신청을 하는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다시 접수창구로 가서 변경하여 접수했다. 물론 처음에 내가 선택했던 필지보다는 위치도 조금 안좋고 면적도 커서 부담이 가지만, 넓으면 더 좋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문화마을 단지를 빠져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후 농업기반공사에 확인해 보았다. 내가 신청한 필지는 경합이 되지 않아 그대로 당첨이 될것이라는 말을 듣고 뛸듯이 기쁜마음에 아내에게 얼른 알리고 머리를 맞대고 자금조달 계획을 짰다. 그후 아직 계약금 10%외에는 1차 중도금도 내지 않았지만 난 그땅이 내것이 다 된양 기쁘기만 하다. 일요일에는 아이들까지 비좁은 마티즈에 태우고 가서 '이땅이 우리집터가 될것이다' 라고 자랑도 했고 마치 땅이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할듯이 가끔 토요일이면 퇴근길에 들러서 다시보곤 한다.

아무리 내것이 되어도 자금이 없어 바로 집을 짓지는 못하지만 5년간은 채소라도 심어야 겠고 식목일에는 과일나무라도 심어야 겠다고 아내에게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과일나무를 얼마나 심을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전에 어떤 책에서 누가 '집을 지으려면 수년간에 걸쳐 설계도를 만들고 꿈을 그리고, 자재도 조금씩 모아야 정이가고 마음에 드는 집을 지을수 있다' 고 해서 그런지 몰라도 길을 가다가도 조금 멋있게 보이는 집을 보면 저렇게 지을까? 아니면 요렇게 지을까? 하면서 생각하곤 한다. 앞으로 5년안에 집을 지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제주도에서 보았던 하얀색의 펜션같은 주택, 특히나 내가 제일 갖고싶은 내 서재(별로 책도 읽지 않는 성격이지만 분위기는 좋아해서) 가 있고 마당에는 철마다 꽃이피고 과일이 열리는 과일나무가 있고 뜰에는 강아지가 한가롭게 졸고있고 또 담장주변에 해바라기가 고개를 삐죽히 내밀고,담장 한켠에는 토끼장이 있고, 닭장이 있는 그런 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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