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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by 수레의산 2025. 3. 16.

    이 작품은 1975년 12월에 '칼날'이 발표되고, 그 이듬해 '뫼비우스의 띠',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8년 12편으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1975년이면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고, 1978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충북의 시골마을이었고, 농가에서 태어나 그래도 밥은 굶지 않는 경제를 이끌어 갔던 부모님 덕에 학비가 밀리거나, 상급학교 진학을 고민하지 않았기에 당시의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20세부터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2년엔가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창립되고, 곧이어 노동조합으로 전환되면서 노동자의 삶을 곁에서나마 조금 알게 되었고, 그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환경이 많이 좋아진 후였다.  전에도 한 번 읽어보기는 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첫부분 뫼비우스의 띠에 나오는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다른 부분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뫼비우스의 띠]

    수학 담당 교사가 학년 말 수업에서 뫼비우스의 띠 이야기를 시작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직사각형을 그냥 원으로 붙였을 때는 내부와 외부가 존재하지만 그 직사각형 면을 뒤집에 붙이면 안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밖으로 변하므로 안과 밖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 고등학교 때도  우리 수학선생님이 한 번 이야기를 하셨었다. 근데 왜 그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꼽추와 앉은뱅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꼽추와 앉은뱅이는 서울 변두리의 행복동에 거주하는 빈민들이다. 그런데 당시 한창 군사정권이 저지르던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집이 헐리고 쫓겨나게 된다. 재개발 사업에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는 똥파리들이 많이 꼬인다. 당시 복부인, 딱지(입주권)를 거래하기 위한 꾼들... 

    당시 시세가 38만원인데 거래꾼은 이를 16만 원에 산다. 집은 헐리고, 전셋돈 빼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갈 곳이 없는 도시 빈민인 꼽추와 앉은뱅이는 억울해서 이 매매에게 20만 원씩만 빼앗고 매매꾼을 죽인 후 자동차에 휘발유를 끼얹어 태워버린다.  한없이 불쌍한 빈민들과 이들을 등쳐먹는 각종 투기꾼들, 매매꾼들이 대비된다. 소설집 뒤편에 있는 해설을 보니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람들이 공존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한다고 해설해 놓았다. 

 

[칼날]

    행복동 높은 곳에 사는 신애는 그저 평범한 가정이다. 그의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다. 시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병원비로 지출이 많아서 도심에 있던 집을 팔고 변두리인 행복동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 뒷집에는 세무공무원이 살고 있었다. 세무공무원의 월급은 자기 남편의 월급보다 적지만 사는 것은 훨씬 부유하게 산다. 그들은 TV, 냉장고 등을 갖추고 살고 있다. 자가 수도까지 있어 한밤중에 물을 받을 필요도 없는 집이다. 그리고 앞집은 큰 대기업에 다니는데 이번에 승진했다고 한다. 그 집도 부잣집이다.  어느 날 물 받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앞집에 난장이가 나타나서 물 받기가 힘들면 수도꼭지를 다시 달으라고 한다. 앞집은 이미 자가 수도를 놓았다고, 수도꼭지를 다시 단다고 물이 빨리 나온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신애가 그 소리를 듣고 솔깃해져서 그 난장이를 찾아 수도꼭지 교체공사를 했다. 공사가 다 끝났는데 자가수도 업자가 나타나서 난장이가 자기들의 일을 빼앗는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을 보고 신애는 집에 있던 칼을 휘둘러 자가수도 업자를 쫓아내고 난장이를 보호해 준다. 

    정말 어렵게 사는 빈민인 난장이와 그래도 평범한 정도의 신애, 뇌물을 받아먹는 공무원,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는 집, 자가 수도 공사를 하는 업자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신애는 우리는 모두 난장이라고 하면서 빈민의 편을 들어준다. 

 

[우주여행]

  윤호의 아버지는 율사(변호사?)이다.  부유한 그의  아버지는 윤호에게 A대학 사회계열의 진학을 강요한다. 그러나 윤호는 B대학 사학과를 희망한다. 둘 간의 타협은 없다. 오직 아버지의 강압만 있을 뿐이다. 그 아버지는 어느 날 지섭을 가정교사로 데려온다. 지섭은 윤호 할아버지와 친구의 손자이다. 윤호의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섭은 가난하다. 가난해선지는 모르지만 A대학 법학과 4학년을 중퇴했다.  가난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약간의 암시가 된다.

    지섭은 행복동의 빈민가를 드나든다. 특히 난장이의 집을 자주 찾는다. 그러면서 우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윤호에게 해 준다. 난장이는  '이생망' 이라고 예측했을까? 그래서 다음 생을 달나라같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어 했을까? 부자동네 사는 윤호에게 빈민굴은  충격이지 않았을까? 난장이 큰아들 영수는 다 낡은 라디오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라디오가 고쳐지지 못해서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고, 영희는 줄끊어진 기타를 치고 있다. 난장이는 그의 사업자본이 별 볼 일 없는 절단기. 멍키 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지굽. 큭 작은 나사. T자관. U자관. 줄톱뿐이다. 그에 반해 부잣집인 윤호의 누이는 매번 남자와 만나 뒹굴 생각만 한다. 윤호는 그런 누나에게 '창녀'라고 비꼰다. 지섭은 난장이집 철거 과정에서 싸우다 얻어터지고 윤호네 집에서 쫓겨난다. 윤호는 다른 부잣집 아이들 과외하는 그룹에 들어가지만 그도 마찬가지다. 부잣집 아이들은 그저 놀 생각뿐이다. 그 그룹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은희를 만나고 둘은 사랑하게 된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 편은 소설집의 제목으로 사용된다.  작가는 여기를 핵심으로 보지 않았을까?  이 편은 세 개의 작은 단원으로 나뉘는데 1 단원은 큰아들 영수의 시점으로 쓰인다. 2 단원은 작은아들 영호, 그리고 3 단원은 영희의 시점으로 쓰여진다. 각 단원 모두가 비참하고, 그런 비참한 사회에 대부분 독자들이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하지 않지만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천국을 생각한다.' 이보다 직관적인 문장이 있을까?  같은 변두리인데 주택가에는 부자들이 살고, 이곳, 방죽 주변에는 무허가 빈민굴의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매일 놀면서 나쁜짓하는 그런 부자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산다.  난장이 아버지는 자식들을 꼭 공부시켜서 남들처럼 잘 살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난장이는 어늘부터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하고, 종당에는 치매까지 걸린다. 난장이는 지섭과 가까이 지내면서 '사랑이 없는 지구, 열심히 일하고 나쁜짓도 않했는데도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래서 더이상 희망이 없는 지구를 떠나 달나라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재개발지역 철거 계고장이 날아든다.  이미 동사무소에는 철거 계고장에 따른 주민들과 이들로부터 입주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철거되는 마지막 날 지섭이 사온 소고기로 마지막 식사를 한다. 그들의 집은 이제 없다. 25만원을 받았지만 전세금 15만원을 주고나면 10만원밖에 남지 않는다. 영희는 사라졌고, 이내 난장이도 사라진다. 영수는 난장이 아버지가 달나라로 간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입주권은 팔렸고, 집은 철거되었다. 철거되는 날 지섭이 철거를 지휘한 공무원을 폭행하고 그도 얻어터진다. 영희는 그런 와중에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속으로 던져 넣고 있다. 영희의 아름다운 꿈은 사라진 것이다. 영호는 매일 책만 읽는 형 영수가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영호는 입주권을 25만 원에 판다. 그나마 최고 시세를 쳐주는 사람이다. 영호는 시세를 많이 주는 곳에 얼른 팔고 떠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입주권을 판 그날 영희가 사라졌다. 영호는 영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하고 풀숲에 그냥 앉아 있었다. 영호는 현실주의자 일까?

 

    영희는 집을 나온다. 그리고 밖에서 회색에 싸인 축소된 집, 축소된 가족을 본다.  입주권이 팔리던 날, 영희는 입주권을 사는, 검은 승용차를 타고 그를 따라간다. 거기에서 잔 심부름과 서류정리 등을 해주며 산다. 그리고 밤에 그의 잠자리까지....

어느 날 그녀는 그가 그녀를 범할 때 사용했던 마취약을 수건에 젹셔서 그의 코에 얹는다. 그는 잠자다가 그대로 마취된다. 그녀는 금고를 열고 그녀의 집 매매 계약서와 표찰, 그리고 돈을 챙겨 나온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곧바로 동사무소에 가서 아파트 입주신청을 하고, 구청까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한다. 양심 저쪽에서는 그러지 마라고 하지만, 그 집은 그녀의 집이기에 굳게 마음을 먹는다. 동사무소 사무장이 그녀의 가족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녀는 자기 식구들의 행방을 물으러 간다. 거의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꿈을 꾼다. 큰오빠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라고..

 

[육교 위에서]

    신애의 동생이 입원했다. 계속 소화를 못 시켜 몸무게가 12킬로그램이나 줄었다.  내과를 다니다가 내과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에 따라 정신과 진료를 받고 정신과에 입원했다.  신애의 동생과 동생 친구는 요즘 말로 하면 작은 저널리스트였다. 그들은 반대를 못하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힘이 평화로운 변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학교 신문에 긴 글을 써서 보냈으나 주간(대학교수)에 의해 반려되었다. 그래서 등사기를 빌려다가 밤새 신문을 만들어 교내에 배포하려 하였으나 학생들은 이미 그것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시가 유신이 개지랄하던 시기니까- 그나마 목소리를 크게 내던 친구들은 모두 군대에 끌려간 후였다. 

 

    세월이 흐르고 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만났는데 동생의 친구가 당시 주간이었던 교수가 자기 회사로 와서 상급자가 되었다고, 그리고 자기 옆에서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유혹과 압박에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그날 술집에 가서 떡이 되도록 마셨다.  그 이후 그 친구는 결국 그 교수를 따라갔다. 그리고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상과 현실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현실을 따라 변절한 동생 친구를 보며 정신적 갈등을 견디지 못하여 소화장애와 정신적 장애를 견디지 못하고 입원했던 것이다.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 중산층의 현실과 타협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궤도 회전]

    경훈은 지섭이 간 후로 연이어 3년째 재수 중이다. 그의 아버지인 율사는 결국 아들에게 굴복했다. 경훈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은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질까지 했지만 포기했다. 그래서 경훈은 조용히 살게 되었다. 그들은 행복동의 3층 주택을 팔고 북악산 산허리 단독주택으로 이사 갔다. 그곳은 행복동 빈민가는 물론, 주택가보다 훨씬 쾌적한 부자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거기에서 경훈은 은강그룹의 손녀인 경애를 만난다. 어느 날 경애의 초청으로 무슨 토론회를 가봤다. 그곳은 부잣집 아이들이 무슨 노동자 토론회를 한다는데 그저 겉핧기로 진행하는 모습을 본다.  은강그룹의 손녀나 그 친구들에게는 행복동 빈민가 난장이의 가정과 같은 생활환경은 상상도 못 하는 실정임에도 그저 남에게 보여주기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빈민 포르노 같은 것이겠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가 캄보디아에 가서 빈민 포르노를 했다. 15살 소년을 안고 포즈를 취하면서 자기의 홍보에 사용했다. 나쁜 년.

 

    어쨌건 경훈의 노동수첩도 훔쳐보고 경훈에게서 행복동 빈민가의 실상을 들은 경애는(원래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거치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물론 그 가족들도 할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으르렁대는 것은 물론이다. 

 

[기계 도시]

    난장이네 집은 난장이가 죽고 나서 은강시로 이주했다. 삼 남매는 공장에 다녔다. 그해는 삼십 년 만의 무더위가 닥쳤다. 온 나라가 찜통더위였다. 그리고 기계도시인 은강시는 더욱 심했다. 그러나 윤호네 집은 미제 에어컨이 설치되어 시원했다. 은강시는 인천시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항만도시이고, 기계 도시이다. 서울에서 밀려 난 가난한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들어왔다. 사실 서울의 재개발로 인하여 빈민들이 쫓겨간 도시는 성남시인 경우가 많았는데 하여간 소설에서는 인천시다. 그 무더운 여름날에도 공장의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멈출 수 없었다. 그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울에 살고 있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이다. 노동조합이 있지만 대부분이 어용노조였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고 사용자의 편이었다.

 

    노동자들은 원하는 직장 요건에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직장을 더 원했다. (71.6%), 그리고 작업 피로도 설문에서 항상 피로하거나 피로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93.6% 였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 같다는 생각에는 62.8%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다만, 도저히 안된다는 절망적인 응답도 3.8%나 되었다. 

 

    큰아들 영수는 노동조합을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사용자들에게 얻어맞기도 했고, 영희는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윤호가 사는 집 옆에 은강그룹 회장이 살고 있었다. 영수는 윤호네 집에 있다가 은강그룹 회장을 죽이겠다고 한다. 윤호는 그건 미친 짓이라고 말린다. 윤호는 영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하다가 '단체를 만들자. 그 사람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야'라고 생각한다.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영수는 은강 생활 초기에 아버지 꿈을 자주 꾸었다. [아버지의 키는 오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보였다. 작은 아버지가 아주 큰 수저를 끌어가고 있었다. 푸른 녹이 낀 놋수저를 아버지는 끌고 갔다. 머리 위에서는 해가 불볕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그 놋수저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불볕 속에서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 아버지는 키보다 큰 수저를 놓고 쉬었다. 쉬다가 그 수저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버지는 불볕을 받아  뜨거워진 놋수저 안에 누워 잠을 잤다. 나는 수저 끝을 들어 아버지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난장이에게 가족의 생계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당시 도시 근로자의 이론상 최저 생계비는 83,480원,  영수네 가족의 세전 수입은 82,231원, 세후 수입은 62,351원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그들  가족은 죽어라 일을 했다. 영수는 차 트렁크에 허리도 못 펴고 드릴 두 개를 가지고 구멍을 뚫은 다음 나사를 박았다. 점심시간 손이 떨려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영희는 방직 공장에서 일 분에 백이십 걸음을 뛰듯이 걸어 직기를 관리했다. 한 시간에 칠천 이백걸음을 걸었다. 점심시간은 십 오분밖에 안되었다. 그래도 월급이 너무 적어 매월 적자를 면할 수 없다. 그러니 이건 생계비가 아니라 생존비다. 노동조합에 잔업수당을 못 받았다고 신고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다고 일을 몰아붙여서 결국 회사를 자진해서 나가게 만든다. 영희는 영화에서 나온 릴리푸트읍을 동경했다. 그 도시는 난장이들끼리 모여사는 도시다. 읍장도 난장이다. 그들은 서로 의논해서 결정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도시다. 영희는 점점 의식화 되어 갔다. 영수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난장이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는 세상이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세상을 꿈꿨다. 지나친 부자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므로 그들을 처벌하기를 꿈꿨다. 

    은강 방직공장에서 노사협상이 개시되었다. 사용자들은 언제나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들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언제나 일방적이고, 노동자들이 불법에 대해 항의하면 모르는 이야기라고 둘러댄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할 말이 없으면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제거하라고 한다. 그들은 사랑이 없다. 인간에 대한 사항,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더 잘살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산다. 사랑이 없는 그들에게 신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이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은강 방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클라인 씨의 병]

    뫼비우스의 띠와 유사한 물체이다. 원통형 병의 아랫부분을 구부려 다시 몸통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구조다.  이것도 병의 내부가 다시 외부로 이어지고, 그 외부는 다시 내부로 들어간다. 사실상 상상을 못 한다지만 상상은 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구조다. 

    영수는 회사에서 비록 조수로 있지만 노동자 교회의 목사와 과학자에게 교육도 받고 은강 대학 부설 노동문제 연구원에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쪽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다는 전설적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그는 바로 김지섭이었다. 그는 활동 과정에서 많이 얻어터지기도 했다. 그는 영수에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노동현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그런 영수를 걱정한다. 어머니는 제발 영수가 그냥 조용히 공장에서 일만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수는 그럴 수 없었다. 영수는 나름 은강 방직의 노사협상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회사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내가 굶주려 애쓸 때 너 있었나

밥을 찾을 때 거기 있었나

내가 목말라 애쓸 때 너 있었나

물을 찾을 때 너 있었나

내가 병들어 누웠을 때 너 있었나

돌봄 바랄 때 거기 있었나

 

회사의 거대한 주인은 거기 없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노동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생산에 따른 부를 거의 모두 가져갔다. 이게 불합리한 세상 아닐까? 불합리한 클라인 씨의 병 같지 않은가?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은강 그룹 회장의 삼남인 경훈, 사업에 대한 욕망도 있고, 부족한 것이 없다. 그는 가끔 경제 관련 책을 읽는 것 말고는 그저 젊은 여자들과 욕정을 불태우는 일에 빠져있다.  

    어느 날  그의 숙부가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에게 칼에 찔려 죽었다. 영수는 은강 그룹의 총수인 경훈의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으나 둘이 닮아서 착각을 해 그의 숙부를 죽이게 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은강 그룹이 저지를 노동탄압이 밝혀진다. 은강 사측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는가 하면, 노동조합을 깨뜨리기 위해 자기들 멋대로 선관위를 구성하고 새로운 노조를 결성하려 했다. 재판정에서 영수의 가족과 노동자들은 목에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경훈은 그 모든 것이 보기 싫었다. 자기들이 돈을 대서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왜 더러운 노동자들이 자기들에게 덤비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을 증오할 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사이에는 직사각형의 종이처럼 안면과 바깥면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그의 사촌, 즉 숙부의 아들은 노동자들을 옹호하려고 한다. 회사가 그들을 너무 몰아붙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거대한 부자들, 경영자들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고, 아마도 경영자층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영수도, 난장이도 세상을 사랑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사용자들도 사랑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노동자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회사 밖 교회에 다닌다고, 노조를 결성했다고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일자리를 박탈할 수 있을까? 사용자들은 오로지 노동자들을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가시고기들이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가? 경훈은 꿈속에서 가시고기들이 튀어올라 자기를 찌르는 꿈을 꾸다가 깬다.  정년 뫼부우스의 띠와 끌라인씨의 병처럼 내부와 외부가 하나 되는 그런 세상은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에필로그]

    수학교사는 그해의 학생들 예비고사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수학교사직에서 쫓겨나서 윤리과목을 가르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 예비고사 성적이 낮은 것이 꼭 수학교사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첫 장에서 나온 '뫼비우스의 띠'에서도 나온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책임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하다면 그것은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는데, 그렇다면 사회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오히려 약한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권력자가 문제이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 들어 야당과 협상도 하지 않고, 야당 대표를 탈탈 털어서 수사를 받게 하고, 피의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증거나 증인을 조작해서 재판을 받게 하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기에 협상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 대통과 집권여당.

그들은 마침내 총선에서 야당에게 192석을 내어주게 되었는데, 그것 조차도 부정선거 때문이라며 더욱더 야당과 대화나 협상을 하지 않는다. 헌법은 저리 가라고 하며 방송위를 2인체제로 운영하거나 국회 상임위에 나와서 장관들, 장군들이 야당 국회의원 질문에 대들거나 비웃거나 무시하는 행태를 벌였다. 그러더니 2024. 12. 3일 미친 대통령이 국가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포고령 1호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의 계엄사 통제 ▲파업·태업·집회 금지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헌법위반이고 계엄법 위반이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여전히 야당과 국민들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고 있다. 

 

    차력사를 따라갔던 꼽추와 앉은뱅이는 어느 날 자기들만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밤사이 차력사는 도망가버렸다. 그들은 자기들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밤에 길을 나선다.  차를 타고 갈 수도 없는 그들은 고속도로를 걸어간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보지만 서는 차는 없다. 꼽추는 겨우 한 마리의 반딧불을 보고 쫓아가다가 차에 치여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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