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실천문학사, 1999년
1941년 제주출생인 작가 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주의 기억을 쓴 자서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2008년도인가 국방부에서 장병들에게 금서 이십몇 가지를 지정하였고, mbc! 느낌표 선정도서로 된 이 책에 무슨 이야기가 있기에 금서로 되었을까 하는 궁금한 심정으로 읽게 되었다. 국방부가 이 책을 금서로 한 것은 보나마나 제주4.3사건을 다루었다고 해서 그런것 같은데.. 노무현대통령이 국가폭력으로 사과까지 한 사건을 가지고 금서로 한것 자체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뿐더러, 전체적인 내용에서 4.3 사건의 기술은 그리 많지 않다.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가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기술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어린 시절뿐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렇지.. 그랬어.. ' 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해방 전 궁핍한 제주도민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며, 작가는 정신병을 앓아 집을 나간 아버지, 그리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으로 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할어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외로운 유아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작가가 7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시위군중에 대한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3.1 사건의 여파로 계속해서 시위가 이어지고, 제주민의 아픔을 외면한 미군정은 남로당의 선동이 있다며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아세우며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는 1948년 4.3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 당시 작가는 8살에 불과했지만 제주 중산간지대를 불태우는 방홧불, 엄청난 사람과 가축의 떼죽음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 무렵 친가보다는 외가에서 생활하던 작가는, 둘째 이모부는 입산자, 셋째 이모부는 경찰, 그리고 작가의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친척들과 친구의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이 성장할 때까지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았으리라.
광복에 대한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수백 명의 희생, 극심한 흉년 등의 악재가 겹쳤고,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관리의 모리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터져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인데 이의 해결은 마다하지 않고 미군정이 남로당의 선동으로 몰아 시위군중을 폭도로 몰아붙였고, 대부분의 중산간 제주도민들은 죽지 않기 위해, 또는 겁이 나서 산으로 도망을 쳤던 것인데, 미군정과 자유당정권은 총 투표거부를 핑계로 피의 소탕을 펼쳤던 것이 제주 4.3 사건의 개요다.
4.3 사건은 앞뒤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살해를 당하거나, 폐허의 대지에서 고통을 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1950년 6.25 전쟁 때 예비검속으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죽고, 해병대로 일반군인으로 징집되어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그때 제주도 토벌대에 많던 서청,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서북청년단... 빨갱이를 척결한다는 구실로 깡패들로 조직되었던 서청과 지금의 뉴라이트가 같이 겹쳐온다.
작자는 4.3 사건의 아픈 기억을 폐허에서 커 나오는 오동나무의 파란 잎과 같이 제주의 아이들도 아픈 기억을 뒤로 넘기면서 성장하여 제주를 푸른 풀빛으로 덮었다고 하며 4.3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다시 한 어린아이의 성장기로 돌아간다.
제주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나 어릴 적 놀던 풍경은 비슷한 것 같다. 작품 속에 묘사되어 있는 글을 한번 보자
"(중략) 흐린 날도 마다하지 않고 놀았는데 물속에 너무 오래 있다가 나오면 몸이 덜덜 떨리게 추웠다. 입술은 오디 먹은 것처럼 퍼레지고,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개지고, 손가락 발가락은 물에 불린 콩껍질처럼 쭈글쭈글해지고, 고추는 살 속에 파고들어 보이지 않는데, 이빨을 딱딱 마주치면서 떨어대는 그 꼴을 상상해 보라.
"야, 너 클났다. 고추가 없어졌잖아!"
댓 살짜리 조무래기들은 그 말을 곧이듣고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중략)"
잠자리 잡기, 여치 잡기, 잠자리 꽁댕이에 보리짚 박아 날리기 등등은 나도 어렸을 적에 많이 했던 놀이다.
예전엔 왜 그리도 종기가 많이 났었는지.. 초등학교 때 박박 깎은 머리엔 부스럼으로 인한 땜통들이 즐비했었다.이고약이 나오면서 자질이 들어 지금엔 거의 볼 수 없지만... 1년 중 명절 전에 잡던 돼지와 돼지 오줌통을 가지고 놀던 일은 모두 지금 50대 이상의 어릴 적 이야기와 같다.
물가에서 헤엄치기,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 다이빙할 때 배에서부터 떨어지기, 제주도 조밭과 조밥, 그리고 가뭄, 지독한 가뭄에 지랄같이 파란 하늘..
폭풍의 밤이 무서웠던 어린 시절, 광란의 밤이 물러간 뒤, 새 아침은 그러한 모습으로 밝아왔던 것이다. 위대한 아침, 시련을 이겨낸 장하고 거룩한 신생의 빛, 아마도 나는 그러한 아침으로부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시련에서 온다는 것을, 신새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종횡무진 환희에 찬 군무를 벌이던 제비 떼, 그 눈부신 생명의 약동!
작가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1학년이 되면서 동네아이들 무리에서 학교친구들과의 무대로 바뀌며, 사춘기로 접어든다. 그 시기쯤 사내 아이들이라면 모두 궁금해 하는 여성의 누드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궁금증... 사춘기때에 우리모두 겪었던 이야기들이 입술을 비죽히 비틀며 웃음을 배어들게 한다. 사춘기때쯤 아버지의 외도로 슬픔에 빠졌고, 그 슬픔으로 인해 문학가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작가는 수채화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기를 키워준 제주도 고향을 쓰다듬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자 이젠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귀향연습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있다. 지금 찾는 제주의 고향은 그런 순수함을 잃어버린, 오염으로 가득찬 도시가 되었지만 민물에서 태어난 연어가 너른 바다에서 살다가 다시 민물로 돌아오듯이 작가는 자신의 귀향을 연습한다.
나도 한번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게 되었다.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내가 컸던 시골집과 마을을 그려보며 논밭두렁을 걷는다. 그 그림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둘러앉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있는 어린아이도 있고, 옛날 보리이삭과 벼이삭을 줍기 위해 보리벤밭과 뼈를벤 빈논을 헤매던 아이도 보인다.
이제 내 나이도 작가가 글을 쓴 나이인 50이다. 지금 우리 나이로 50세 이상된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오를 텐데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일생을 회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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