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국산 가격의 30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면서 맛도 빼어나 국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우려했던 미국산 쌀 칼로스가 우리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싸구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수확이지만 맛이 없어 꺼리고 싶은 통일계 볍씨를 강제로 파종해야 했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칼로스 쌀에 대한 항간의 평가는 우수했다. 군사정권 몰래 심던 우리 일반 벼를 능가한다는 거였다. 그 당시 칼로스 쌀을 먹었던 사람, 그 사람의 입방아를 들은 이웃, 입방아가 만든 소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소비자들이 농민의 가슴에 든 시퍼런 멍을 애써 외면하며 미국 쌀을 구입했는데, 기대했던 밥맛과 거리가 멀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산 우수 품종에 비해 이천 원 내외 저렴하게 책정된 칼로스를 구입했던 소비자의 소감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먹을만하다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묵은 밥을 물에 말아 놓은 것 같다거나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통일벼만 먹어야 했던 시절에 경험한 칼로스는 요즘 우리 일반 쌀보다 나을 게 없다고 하니, 배고플 때 맛본 임금이 은어라 칭했다 궁궐에서 다시 젓수시고 도로 묵이 된 사연과 비슷한 모양이다.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건조 상태가 아무리 양호하더라도 태평양을 건너오는 도중에 상하지 않도록 약품 처리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국산 밀과 달리 바구미가 달라붙지 않는 수입 밀이 그렇지 아니한가.
한데 처음부터 칼로스를 구입하려 하지 않은 소비자는 맛이나 가격이 선택하는 기준이 아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몸에는 내 땅의 농산물이 맞는 법. 남의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그것도 주식으로 식구들에게 줄 수 없다고 여긴다. 가계 지출에서 식비, 그 중에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많지 않은데, 체질에 맞지 않는 식량을 주식으로 먹을 이유가 없다고 다짐하는 그들은 칼로스는 물론 중국에서 우리를 겨냥해 재배한 쌀도 거부할 공산이 크다. 소비자들의 거듭된 외면으로 값이 떨어져도 구입하지 않을 성싶다. 그런데 그렇게 소신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캘리포니아의 장미라는 뜻으로 칼로스(Calrose)라는 상품명을 단 미국 쌀의 수입에 거세게 항의한 농민들은 소비자들이 보이는 요즘 반응에 흡족해할지 모른다. 하역에 저항하던 자신에 머쓱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미국계 다국적 곡물상은 운송 중 바구미가 접근 못할 정도로 화학약품을 뿌리면서도 냄새가 나기 않게 조치할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하면 죽는 시늉까지 다하는 한국 정부가 아닌가. 우리 밀 농부를 고사시키며 헐값에 들어온 농약 듬뿍 미국 밀을 소진하려고 분식을 장려한 경력이 있는 정부가 칼로스 소비를 앞장서 부추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적당한 수분을 함유해야 맛이 유지되는 쌀을 장기간 제대로 보전하려면 냉장해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곡물상은 쌀 수송 화물선을 냉장하지 않을 것이다. 올라가는 물류비용으로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압력 카드를 다시 뽑아들지 모른다. 현재까지 효과가 좋았다. 식량 자급률이 쌀 빼고 25퍼센트에 불과한 처지에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 한국이 아닌가. 이제 쌀까지 포기하게 만들면 완벽하다. 앞으로 돈 싸들고 와서 팔아달라고 사정할지 모른다. 그때 값을 슬쩍 올릴 수 있다. 농약이 묻었든 맛이 없든, 잘 팔릴 게 틀림없다.
한국에서 1등급인 칼로스가 목하 푸대접받는데 미국은 아직 조용하다. 전례로 볼 때 그들은 조만간 재미 붙인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일단 두고 보는 중이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가 미덥지 않다면 압박을 가할 것이고 예의 한국 정부는 당연히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아직 한국 쌀은 자급을 유지하고 소비자들은 칼로스를 외면하는데, 충직한 한국 정부도 어쩔 수 없다. 핸드폰 수출을 위해 중국산 양파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던 정부가 얄미웠던 소비자들이 남아도는 국산보다 중국산 양파를 선호한 것은 가격이 맛과 영양을 보상했기 때문인데, 칼로스는 다르지 않은가. 칼로스 값을 팍 내리면? 알 수 없지만 한미 간 협상을 다시 진행해야 하나. 그러므로 한미FTA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요사이 우리네 식당들은 후식으로 오렌지를 내놓는다. 세로로 얇게 썬 오렌지는 향기도 모양도 색달라 매운 음식 뒤에 먹는 후식으로 적당해 보이지만 속단할 수 없다. 신중한 소비자라면 요즘 우리나라에 그렇게 비쌌던 오렌지가 왜 넘치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일본에서 마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평양을 건너며 상하지 않도록 다량의 농약을 살포했으므로 일본에서 하역을 거부하자 한국에 헐값으로 팔아넘겼다는 주장이다. 한국에 판 게 아니라 버린 거라고 정정하는 그이는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다. 소비자가 먹지 않으면 문제 생길 일이 없다. 소비자의 의식이 중요하겠다.
3년 생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곧 수입하겠다고 정부는 예고했다. 얼마 전에 광우병으로 죽은 미국 소는 이빨이 빠진 모습으로 보아 8년생이라고 미국 측이 주장하고, 미국 자료에 의존한 우리 정부가 화답한 것인데, 유치가 빠졌으므로 3년생 미만으로 의심하는 우리 측 전문가의 소견을 무시하며 수입을 서두르는 농림부는 누구의 정부일까. 미국 정부는 우리 농림부가 참 기특하겠지만, 소비자는 게름직하다. 광우병은 3년생 미만의 소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통계는 안심할 만한 증거일 수 없다. 광우병 감염에는 소나 사람이나 나이 제한이 없다. 어릴 적 먹은 쇠고기로 나이 들어 광우병이 발현돼 사망한 사례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속 시원한 답이 있다. 칼로스 쌀처럼 먹지 않은 것이다. 정 먹고 싶다면 내 땅에서 나온 여물과 사료로 얻은 유기 축산물을 우리 땅의 쌀과 채소와 곁들여 먹으면 된다. 고기는 조금 먹는 것이 낫다. 어금니보다 송곳니가 훨씬 적지 않은가. 통상압력과 관계없이, 수입한 쌀, 고기, 과일, 채소들은 먹지 않으면 된다. 광우병과 아토피를 몰랐던 조상처럼. 쉬우면서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야곱의 우물, 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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