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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by 수레의산 2021. 12. 31.

(야성의 부름, 잭 런던, 권영택 옮김, 민음사)

 

(줄거리)

  벅은 개의 이름이다. 벅은 세인트버나드 종(부계)과 스코드랜드 셰퍼드(모계)의  혼합이다. 비교적 온화한 미국 남부지역의 부유한 집의 정원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판사와 함께 사냥을 가거나 아이들의 보호자로 함께 산책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집의 정원사의 조수, 마누엘에 의해 주인 몰래 팔리게 되었다. 벅은 그저 평소에도 함께 지내던 마누엘과 산책을 하는 줄 알고 순순히 따라갔고, 목줄을 맬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목줄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을 때 으르렁 거리며 대들었지만 목줄에 졸려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중간상을 거쳐 개를 길들이는 붉은 스웨터의 사나이에게 전해져 곤봉으로 십여 차례 이상 맞으며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벅은 미국 북부의 정부기관인 특수우편물 수송견으로 팔리게 되어 거기에서 생전 처음 눈을 만나게 되었고, 개 썰매에서도 빨리 습득하고, 썰매개의 대장 스피츠와 대결하여 대장 자리를 차지한다. 벅은 썰매개의 대장 자리를 맡으며 자부심도 갖고 의무감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다시 금광을 찾아간 사람들이 가족들이 전하는 우편물을 전달하는 업체에 팔리고, 거기에서는 엄청나게 가혹한 대접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다섯 달도 못 되는 기간에 6천 킬로미터를 달렸다.  개들과 함께 우편 썰매를 끄는 사람들은 이번 임무가 끝나면 기나긴 휴식을 가질 거라고 했지만 임무가 끝난 그들은 다시 북부를 여행하는 철없는 여행자들에게 팔렸다. 그들은 개썰매의 기본도 모르고 여행에 대하여도 모르는 그저 무식하고 철없는 사람들이었다. 기나긴 임무에 지친 개들은 거의 모두 죽고, 벅도 맞아서 죽기 직전에 손턴에 의해 구조된다. 

 

  벅은 손턴의 지극한 사랑으로 부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손턴과 벅은 서로를 사랑했다. 손턴은 벅의 귀에 대고 낮은 욕설을 퍼붓고, 벅은 손턴의 손을 물고 자근 자근 물었다. 이게 그들의 사랑법이었다. 한번은 손턴이 장난으로 벅에게 절벽에서 '뛰어내려'라고 명령하자 정말 뛰어내릴 뻔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물에 떠내려갈 뻔한 손턴을 벅이 구하기도 했다. 벅이 500kg의 짐을 실은 눈썰매를 끄는 게임에 이겨서 손턴에게 1,600달러를 벌어주어 손턴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금광을 찾아 떠돌다가 마침내 사금 강을 찾아 정착한다. 반면 벅은 그들이 정착한 후 나른한 나날들을 보내다가 야성의 부름을 듣고 흥분하여 점차 야성으로 나서게 된다. 그렇게 광야를 질주하며 늑대와 만나기도 한 후 돌와와 보니 손튼은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 벅은 본격적으로 야성의 부름을 받고 늑대들과 어울려 살게 된다.

 

(독후감)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석하든지 간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한 인간이 태어나 노동자 또는 노예의 삶을 살다가 결국 자유를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처음에 그는 안온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나름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기득권의 질서를 배우고, 돈의 힘을 배우며, 돈과 권력(이 책에서는 곤봉이나 채찍)의 무서움을 배우게 되고, 결국 그 힘에 굴복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국가의 일을 하는 곳에 취직을 했고(국가의 특수 우편물 배송업), 나름 자존감도 채우고 의무감도 채우며 열심히 근무했다.  그러나 기관의 그들의 업무중 일부(금광을 찾아 떠난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편지 배송업무)를 외주로 주게 되었다.  외주 업체는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는 것처럼 이 우편배달 업체도 개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었다. 5개월도 못 되는 기간 동안 개들에게 6천 킬로미터를 달리게 해 놓고, 개들이 지쳐 더 이상 자기들에게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즉시 그냥 용도 폐기하여 일반인에게 매각해 버렸다. 이 역시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다르지 않다. 외주업체는 일용직 노동자를 혹독하게 사용하고,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약해지면 곧바로 해고한다. 

 

  이제 벅은 거의 썰매개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리하게 썰매를 운행하고, 재정도 계획없이 집행하여 개의 먹이까지 떨어져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다. 노동자로 치면 이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벅은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결국 '개'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하 저항으로 죽음을 택한다. 아무리 곤봉으로, 채찍으로 내리쳐도 꿈쩍 하지 않는다.  노동자들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면 자살을 택하지 않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극한 선택을 하는 여러 명을 보지 않았는가?

 

  다행히도 벅은 손턴이라는 착한 사람을 만나서 다시 온전한 삶을 찾고 건강을 찾지면 역시 자본주의 굴레인 돈을 벌어 손턴이 금광이라는 돈을 찾아 떠나게 되고, 드디어 자신의 자유를 찾게 된다.  이렇게 노동자들도 자신이 떳떳한 인간임을, 주체적인 노동자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 투쟁을 하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나의 해석을 못 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