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 중국인의 슬픈 자화상 - 아큐정전
1911년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2천년간의 봉건왕정이 무너졌다. 그러나 세계 열강들에게 이리 물리고 저리 뜯기는 힘없는 거인 신세였다. 혁명이 성공하였고 처음에 쑨원이 총통으로 추대 되었으나 자신의 세력이 없었던 그는 위안스카이에게 총통을 물려 주었고, 위안스카이는 주제넘게 혁명으로 공화정을 이루어 낸 것을 무시하고 자신이 황제로 앉을 욕심이 있어, 중국을 더욱 몰락하게 만들었다. 물론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 강제병합되어 식민지 상태였으니 더욱 처참하였지만.
당시 중국은 2천간 이어져온 젠제군주체제에 힘있는 벼슬아치들은 자기 배불리기에 혈안이 되었고 백성들은 그저 무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눈앞에 닥친일을 하는데 만족해 있었다. 그 때 루쉰은 일본에 유학해서 의술을 배워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자 했으나 수업중 일본인 교사가 보여준 필름에서 중국인이 일본군에 잡혀 처형되는 광경, 그 주위에 덩치가 큰 중국인들이 그저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신체가 건강해도 머리가 텅 비어 있으면 다른 세력에게 잡혀 개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하여 국민의 정신을 깨우쳐 보고자 한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글을 쓰게 되고, 글로써 세상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광인의 일기' '아큐정전' 등을 쓰게 된다. '광인의 일기'에서 봉건시대를 살아온 나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새로운 생명, 즉 젊은이들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즉 '사람을 잡아 먹는 못된 버릇'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라고. 또한 아큐 처럼 아무생각 없이 사는 민중들, 실제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날뛰는 민중, 또 힘센 사람에게는 아부를 해대며, 힘없는 아큐를 짓밟고 놀려대는 민중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풍자를 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아큐를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아직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풍자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인훈 작가의 '광장'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소설이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님, 이외수 선생님, 칼의 노래를 쓰신 김훈님등등 더 많은 소설가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히 노동자, 농민, 서민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 많이 쓰여지고 읽혀지길 바란다.
2. 하류 인생의 분투기 - 뤄터샹쯔(駱駝祥子)
신해 혁명후에 아직도 중국은 군벌들이 많았다고 한다. 군벌들은 허구한날 전쟁을 하고, 전쟁을 위한 군량미를 위하여 농민들을 쥐어짜게 된다. 그래서 농민들은 견디다 못해 군벌로 들어가고, 그러면 또 더 많아진 군인들로 인해 더 많은 군량미를 필요로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일본놈들이 우리의 쌀을 빼앗아 가고, 우리 민족자본을 말살하는 바람에 가난이 광범위하게 퍼져서 민중들이 굶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중국 역시 세계 열강들에 의해 수탈 당하고, 군벌들에 의해 수탈 당해서 비참한 민중들이 많았다고 한다. 러퉈샹쯔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라오스' 라는 작가가 쓴 소설인데, 미국의 '이달의 책' 클럽에 의해 '올해의 책' 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뤄터샹쯔는 베이징 인근에서 태어 났는데 얼마 안되는 땅도 빼앗기고 18살에 베이징으로 나왔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어느덧 인력거를 한 대 사서 더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군벌에 걸려서 인력거도 빼앗기고 돈도 빼앗겼으며 얼마 동안 갇혀 있다가 낙타 세 마리를 훔쳐서 돌아왔다. 그는 낙타를 싼 값에 팔고, 다시 리어카를 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어느날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거의 다 죽어가고 있어서 불쌍하여 만두를 사서 먹였다. 만두를 먹고 기운을 차린 노인은 그래도 자기는 인력거가 있어서 먹고 살만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노인은 어린 손자로 데리고 있었다. 샹쯔는 그 노인을 보고 인력거만 사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비참하기는 매 한가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인력거 주인의 딸과 눈이 맞아 결혼하자는데 결혼하면 또 인력거를 사기 힘들어 질까봐 망설인다. 어쨋거나 그는 결혼을 하고, 인력거를 사게 되지만 군벌에서 쫓아와서 낙타 세 마리 값으로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인력거를 또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인력거는 또 빼앗기고 매일 그날이 그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때 부터 대충 살기로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더 수입이 없어지고, 신용이 떨어져서 더 이상 인력거를 빌릴 수도 없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독자들은 너무 비참한 결말이 실망스럽다고 하고, 노동자들은 자기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거냐고 반문한다. 이 작품은 또한 미국에 번역된 번역본은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한다. 중국의 문화혁명 때에 이러한 비참한 결말은 문제가 있고, 소설은 모름지기 사회혁명에 이바지 하여야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젊은 군인들에게 모욕을 당한 후 작가 '라오스'는 자살(?)을 하게 된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는 하지만 시신은 물에 젖지도, 폐에 물이 들어차지도 않았다고 한다.
3. 중국 자본주의 형성과 민족자본의 몰락 - 새벽이 오는 깊은 밤
군벌을 정리하는 장제스 시대, 그리고 조계지에서 활동하는 서구 제국주의 기업들, 그 자본들과 경쟁하는 중국 민족자본의 전쟁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희생위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금융매판자본을 앞세운 서구 자본에 의해 결국 중국 민족자본은 무너진다.
그러한 암흑 속에서도 새벽이 오기 전 깊은 밤에도 곧 새벽이 올거라는 기대는 있다. 새벽이 오는 깊은 밤은 당시의 중국 현실을 말해 준다.
새벽이 오는 깊은 밤의 작가 마오둔은 창작은 현실에서 출발해 현실로 돌아가되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관에 의해 올바른 방향성을 갖는다는 것이라고 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또한 마오둔은 "변혁기의 작가는 시대의 진두에 서서 시대가 그들에게 부여한 사명을 짊어지고 생활을 반영해야 할 뿐 아니라 창조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4.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지식 청년들의 고난과 분투 - 청춘의 노래(靑春之歌)
1931년 일본은 9.18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괴뢰국가를 건설하고 중국 북부를 침략했다. 그러나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오로지 마오쩌둥의 공산군을 타도만을 외치며 일제의 침략을 수수방관 했다. 1933년 장제스는 중국공산당군에 대한 제5차 포위 공격을 개시했고 공산당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계속되는 일제의 침략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젊은 청년들은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만주에서 쫒겨난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대일공격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디어 장제스를 구금하고 국공합작을 하도록 이끌어 낸다. 1935년 1년이 넘는동안의 대장정을 끝내고 국공합작으로 대일공격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내전정지 일치항일'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는등 국민적 저항을 그린 양모의 청춘의 노래는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한 젊은 여성(지주인 아버지와 그가 겁탈한 빈농여성 사이에서 태어난)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5.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민중의 힘 - 이가장의 변천
9.18 만주사변 이후 예안에 정착한 마오쩌둥은 정풍운동을 전개하고 공산당원과 농민들의 정신개조 운동을 전개한다. 이 때의 이야기가 이가장의 변천이라는 소설이다. 자오수리가 쓴 이 책은 마오쩌둥의 사상을 전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농민들과 단결하고 지주는 세를 감해주고, 농민들은 힘써 일하고 그래서 일제와 대적해서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아마도 중국은 일본에게 먹히기 전에 신해혁명이 성공했기에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었지 않을까? 우리도 대한제국이 세워지기 전에, 철종 때 이를 민족혁명세력이 뒤엎어 새로운 세력이 나라를 건국 했더라면 일제에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전쟁한번 하지 못하고 그렇게 나라를 빼앗기다니...
6. 신중국의 수립과 '토지개혁' 운동의 어려움 - 태양은 쌍건허에 비친다.
일제는 1941년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출하기 시작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미국, 영국, 네덜란드가 합동으로 대일 경제제재를 가한다. 사실 전 세계 제국주의자들의 욕심을 다 똑같았다. 뭐 미국이나 영국이나 네덜란드나 일본과 십시일반이다. 좌우지간 그렇게 되니 일본의 우익 주전파들이 득세하여 전쟁을 결의하고 1941년 진주만 공습을 시작한다. 이로써 일제의 전장은 중국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태평양으로 번져나가니 이놈들도 힘이 딸리게 된다. 그러나 장제스 국민정부는 이 때에도 합심해서 외세를 몰아낼 생각보다 자기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공산군 토벌에 더 힘을 쏟아 붓는다.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여 점차 전황은 일제에 불리해 지고, 같은해 11월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가 모여 회담을 하고, 제1차 세계대전(1914년) 이후에 일본이 침탈한 영토는 모두 환원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만일 이것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강제 병합을 당한 것이 1910년이므로. 그래서 조선의 독립은 별도로 보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기에 장제스가 특히 주장하여 넣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의 국민당 정권과 공산당 정권은 계속해서 투쟁하였는데, 국민당 정권은 부패.무능한 반면, 공산정권을 발빠르게 토지개혁을 선언하고 이를 착수하여 중국 농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이 확실한 가운데 원폭을 두 개 맞고 나서 갑자기 항복하여 우리 대한 독립군들이 선전포고를 한고 한반도에 진입할 기회를 놓치게 되어 원통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제 인민해방군이 전국을 장악하게 되고 1949년 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장제스 정권은 타이완으로 이전한다. 이런 와중에서 당링이라는 작가가 '태양은 쌍간허에 비친다' 를 출간한다. 이 책은 딩링이 약 2개월간 토지개혁 공작을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800만부를 찍고 스탈린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7. 새로운 사회 건설의 지난한 여정 -산향거변
- 1949.10.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11월 충칭 점령, 12월 장제스 타이완 천도
- 1950, 6 토재개혁시작. 10월 한국전쟁 참가(항미원조군)
-1956. 1. 한자 간체자 방안 발표
- 1960.12. 중국 전역 자연재해 발생
전쟁으로 황폐화된 중국, 완전히 잡히지 않은 법질서. 그리고 곧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중국 경제는 어려워 진다. 더구나 47. 3 트루먼독트린으로 냉전체제가 시작되며 미국과도 사이가 벌어지고, 미국은 과 유엔이 경제 제재를 가한다. 그래서 중국 경제의 어려움은 더해진다. 마오쩌둥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3반운동(독직, 낭비, 관료주의 반대)을 전개하고 곧 이어 5반운동(퇴물수수, 탈세, 국유자산 절취.사취, 부실공사, 국가경제 정보유출)을 전개하며 토지개혁으로 60~70% 3억명대 농민이 중농으로 전환되어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1953.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데 이미 중농이 되어버린 농민들은 개혁에 시큰둥 하다. 마오쩌둥은 다시 수를 낸다. 이름하여 토론문화 조성이다. 그리하여 모든 입가진 사람들이 공산당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파들이 득세하자 강경대응으로 전화해서 반대파를 대거 숙청한다. 그렇게 하여 공산당 1당 독재가 시작된다.
작가들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정해진 정책대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 권위주의 국가 또는 독재국가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저우리보 역시 그런 뱡향으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1955년 고향 후난성에서 산향거변을 집필, 58 전편 60 속편을 썼다고 한다. 중국은 토지개혁을 마치고 공동생산 체제로 전환을 꾀했다. 그래서 초급생산합작사 운동과 곧이어 고급생산합작사 조직 투쟁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협동농장과 같은 개념인 것 같다. 마오쩌둥은 사실 조급했기에 이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를 인정했다고 한다.
8. 문화 대혁명, 광기와 파괴의 역사 - 부용진
1962년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
-1965 상해 <문회보> 야오원위안 <신편 역사극 하이루이의 파면'을 평함>을 게재하여 우판을 비판, 무화대혁명의 기점이 됨
-1966 문화대혁명 전면적 전개 결정
-1971 미국과 핑퐁외교, 유엔가입, 타이완 퇴출
-1972 닉슨 중국방문, 중미 정상회담, 76년 제1차 텐안먼 사건 발생
대약진운동 실패로 마오쩌둥은 뒤로 물러나고,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전면에 나선다. 이들은 3자1포 정책을 펼쳐서 농민에게 소유농지의 5% 내에서 자류지 인정, 농촌에 자유시장, 자유영휴(남고 모자란 것은 스스로 책임진다)를 준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실각에 인민해방군이 반발하여 '마오쩌둥 사상의 위대한 홍기를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 문화대혁명에 참가하자' 라는 구호가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사실 마오쩌둥의 세번째 부인 쟝칭이 나서서 문화대혁명을 유도했다고 본다. 66년 7.8.9월에 홍위병들이 적대적 만행을 저지르는 광란의 소용될이가 진행되었다. 70여 만명이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구화 부용진 -문화대혁명으로 이유없이 피해를 당한 중국 민중들과 책임있는 고위직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잔챙이들만 처벌을 받는 현상을 소설로 썼다. 이러한 것은 현대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것 같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의 경우 123 정장과 하급 해경들만 처벌을 받았다. 덴장.
9.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 상흔(傷痕)
- 76. 9 마오쩌둥 사망 10월 쟝칭 등 사인방 체포
- 77. 7 사인방 당적 박탈, 문화대혁명 종결선언
- 79. 1 중국과 미국 정식 국교 수립
문화혁명의 피해자와 그로 인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뤘다. 잘못 조작된 선전, 언론에 물들면 대책이 없기는 60년대 후반의 중국이나 현재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청소년들이 그러했고, 우리나라의 태극기부대 노친네들이 그러하고, 개념없는 개신교 목사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개신교 극렬 신자들이 그러하다.
문화혁명을 비판하고, 잘못된 선전선동을 비판했지만 역시 그것은 새로 집권한 덩샤오핑의 입맛에는 맞고 사망한 마오쩌둥이나 천방지축으로 날뛴 쟝칭을 묻어 버리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소설의 끝에 당의 선전물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화주석(화궈평)의 은덕을 기억하고, 화주석을 위시한 중앙당을 따라 당의 사업을 위해 제 인생을 다 바치겠어요' 라고 끝맺음을 하기 때문이다. 역시 공산독재국가 답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북한? ㅋㅋ
10. 먼길 에둘러 돌아온 그 자리엔 - 사람아 아, 사람아, 중년에 들었건만.
중국은 덩샤오핑이 앞장서서 개방을 선도해 나간다. 그러나 중국의 개방과 민주화는 아래에서 부터가 아니고 위에서, 즉 당에서 정한 만큼만의 개방과 민주화가 되는 것이다. 이를 넘어선다면 가혹한 탄압이 있을 뿐이다. 어쨋거나 개방정척으로 경제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하고 문학에도 작가들의 창작성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여전히 백프로 믿을 수는 없다.
다우어후잉 '사람아, 아 사람아'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새로운 시기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무엇을 반성하고 비판했는지, 나아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심도 있는 고민과 성찰을 했는지"에 대해 서술한 소설이라고 한다.
11. 전통으로의 회귀와 문학의 상업화 - 장기왕, 사회주의적 범죄는 즐겁다
1989. 5. 제2차 텐안먼 사태 발생
1992. 8 한국과 중국 국교 수립, 9월 노태우 한국대통령 중국방문
중국도 자본주의 싹이 자라는지 이제는 마오쩌둥의 인민의 견인해야 하는다는 문예는 지나가고, 작가들도 생계를 위하여 글을 쓰는 시대가 된다. 장기왕은 문화대혁명때 시골로 하방하는 두 학생중 한 명이 장기의 명인으로 시골에서 장기를 아주 잘 둔다는 이야기.
사회주의적 범죄는 즐겁다는 이제 자본주의가 밀려 들어오며 향락과 매음, 타락의 길을 걷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람들은 그저 돈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댄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가 물질문명이 정신세계를 앞질러 갈 때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인 것 같다. 나이든 사람들은 세태에 밀려 젊은이들이 너무 타락으로 간다. 그래서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젊은이들은 고리타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좀 세월이 지나고 자본주의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질서를 되찾게 되면 인문학은 다시 중흥할 것이고, 향락과 타락도 계속 성장하지만 어느정도 자제하게 되리라고 본다.
12.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 -폐도
1997. 2 덩샤요핑 사망.
쟈핑와의 폐도는 예전의 황도 '시안'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문화유적이 많은 도시로 다른 신흥도시처럼 공업경제가 없기에 지역은 낙후되었다. 그래서 관광산업을 중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시 사람들이 유입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돈의 바다에 빠져,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파렴치 한 일이라도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된다. 작가 좡즈데는 처음에는 정직하게 글만 쓰는 작가였으나 아내와 점원의 끈질긴 설득에 출판사를 하게 되고 남의 책을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짓 까지 하게 된다. 물론 자신이 직접 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점원이 하는 일을 모른척 하게 됨으로 결국 공범자가 된다.
이는 우리가 지금 중국을 보는 눈과 일치한다. 이런 현상은 얼마전 까지의 우리나라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문화의 발전이란 끝이 없다. 물론 문명도...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가 오고, 거기에 따라 인간들도, 인간들의 생각도...
이것으로 소설로 읽는 중국사를 다 읽었다. 처음 고.중대사는 재미 있었는데 현대로 올 수록 재미가 없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고, 사회주의, 아니 공산주의를 표방한 독재국가로 가면서 문학 역시 그들의 선전수단으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로 될 때는 재미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60, 70, 80년대, 그리고 90년대의 중국을 보면 우리나라도 뭐 그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는 반성이 된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0) | 2021.03.20 |
---|---|
운현궁의 봄 - 김동인 (0) | 2021.03.10 |
소설로 읽는 중국사 1 (0) | 2021.01.28 |
화냥년 - 유하령 (0) | 2021.01.16 |
조선상고사-신채호 (0) | 2021.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