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역사도시 충주의 발자취와 기억 - 전홍식

수레의산 2022. 1. 25. 22:23

(역사도시 충주의 발자취와 기억, 전홍식, 좋은땅)

 

이 책은 지난 2021. 9. 29일 충주시립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었는데 막상 연락이 왔을 때 다른 일로 대출을 못했었다. 그 이후 계속해서 대출 중이라 못 읽다가 이번에 연락이 와서 대출을 했다.

 

충주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충주의 모습, 그리고 구한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쇠락하는 충주의 모습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원래 충주는 중원경으로 고구려나 신라 모두 중요시했던 한강유역이다. 예로부터 넓은 평야지가 펼쳐 있는 곳으로 삼국시대에 패권을 잡는 나라가 백제-고구려- 신라 순으로 이어지며 충주의 땅도 그에 따라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변경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영남지방과 강원도 지방을 서울로 연결해 주는 요충지였으며 영남지방과 강원도의 세곡이 한강을 타고 서울로 운송되는 곳이었다.  또한 한양이 가까운 관계로 서울에서도 중요시하였다.

 

이렇게 충주는 인적자원과 물류가 모이는 곳으로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그러나 당시 충주성은 지금에서 볼 때는 비교적 작게 구획되었다고 보인다. 예전에는 걸어서 다녔으니까 또 다르겠지만. 책에서 안내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지금의 관아공원을 중심으로 성이 지어졌고, 성내와 성문 밖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무능한 노론인 안동 김 씨, 풍양 조 씨 일가의 세도정치가 지방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 이후 혼란한 구한말을 거치고, 일제가 들어오면서 충주는 점점 발전보다는 몰락해 갔다. 대한제국의 23부 시절만 해도 충주부로 지정되었으나 일제가 침탈의 목적인 경부선 철도를 운영하면서 도청소재지가 청주로 바뀌면서 결정적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조선의 경제적 침탈을 목적으로 한 신작로의 개설은 그나마 한강을 이용한 하운을 대체하면서 충주의 몰락을 가속하게 되었다. 

 

충주성은 왜놈들이 도시계획을 하면서 성을 헐어 길을 내고, 그 주변에 일본 놈들의 거주지로 만들어 조선 사람들은 성 밖으로 밀려나갔고, 성문 밖에 있던 '진영'(군사 기지)은 헐어서 세무서를 짓고, 사직이 있던 사직산에는 신사를 지어서 그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러면서 몰락한 소도읍의 시민들은 점점 더 움츠러들고 진보적인 생각을 못하고 보수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에 집착하는 현재의 답답한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충주는 보수정권의 지지세가 엄청나게 큰 지역이며, 그나마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분오열 되는 경우가 많아 답답하다. 또한 외지에서 사람이 들어와 살아보려 해도 '텃세'가 심하다고 한다. 

 

앞으로 얼마가 지나면 좀 생각들이 깨어날까?

 

아래 지도는 충주 홍보대사 김광영 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아래는 책에서 본 성의 모습과 4대 문을 대충 표시해봤다.